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림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의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 사랑합니다. 그길밖에
마른 옥수숫대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 모든 돈을 끌어 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마리 만들어낼 수 있나요?
옥수수 밭을 지나 온 바람이 크레인 위에서 함께 속삭였다
돈으로 여기 방울 토마토 꽃 한 송이 피울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 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던지던 그대여
밤이 더러워 지는 것을 바라본지 너무나 오래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 온 수많은 눈물 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되고자 합니다
받아 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 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 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길 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 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갸날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 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없는 사랑에 의지 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람 고대를 그덕인다
태어 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 사랑합니다 그길 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 앉아 가는 동안
수 만 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 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 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 지금 마주 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 이렇게
월간 문학사상 2012.1월 발표
대관령 옛길
폭설 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 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 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 숭어리 뭉텅베어
입속에 털어 넣는다. 火 酒 -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장에 고여있던 눈물이 울컥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론 환장 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 질 적이면
빙하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너도 갈거니?
낙화, 첫사랑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랑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 할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내몸 속에 잠든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마리 날아든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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