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규리 꽃 피는 날, 저,저 하는 사이에

생게사부르 2016. 6. 11. 09:09

이규리


꽃 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 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 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가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 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 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저, 저 하는 사이에


그가 커피숍에 들어 섰을 때
재킷뒤에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을 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애써 준비 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

저 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상견례하는 자리에서

한쪽 인조 속 눈썹이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한 껏 고요히 앉아 있던 일

각기 지닌 삶이 너무 진지해서

그 일 누구도 말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

저,저, 하면서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한 달만에 시집간 이모는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 드는 데도

저,저 하면서

아무말도 할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