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상국-꽃밥멧밥, 복국

생게사부르 2016. 6. 7. 19:46

이상국


밥멧밥

아카시아꽃을 씻어
밥 잦을 때 안치면

이밥보다 하얀
꽃밥이 되었다

달착지근하고 허기진 밥
먹으면 목이 메었지

보라색 메꽃 뿌리를 메라 하고
밥솥에 메를 넣으면 멧밥이 되었다

서러운 밥상머리
눈물 나던 밥

지금은 아무도 이런 밥을 안 먹지만
전쟁나서 배고플 때
우리나라 산천은 나에게
이렇게 향기로운 밥을 거저 주었지

 

 

복국

 

 

북쪽에 집을 두고 하루를 왔다

문득 남쪽 섬바다가 보고싶어

 

시절은 보리 익는 유월

삼천포 축항머리 오는 저녁에

 

아는 사람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래도록

발전소 굴뚝을 바라보다가

 

손님이 드문한 집을 찾아들어

손마디보다 어린 복국을 먹었다

 

나라는 작아도 다시 못 올 것 같아서

한그릇을 다 비웠다

 

 

 

1946년. 강원 양양군

1976. 심상지' 겨울 추상화' 발표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