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나희덕-소만(小滿), 천장호에서

생게사부르 2016. 6. 9. 01:19

나희덕


소만(小滿)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 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 드리워 지는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소만(小滿)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 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 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 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