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소만(小滿)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 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 드리워 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 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 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 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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