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상국- 비를 기다리며

생게사부르 2016. 6. 12. 02:07

이상국


비를 기다리며


비가 왔으면 좋겠다
우장도 없이 한 십리
비 오는 들판을 걸었으면 좋겠다
물이 없다
마음에도 없고
몸에도 물이 없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멀리 돌아서 오는 빗속에는
나무와 짐승들의 피가 묻어 있다
떠 도는 것들의 집이 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문을 열어 놓고
무연하게
지시랑물 소리를 듣거나
젖는 새들을 바라보며
서로 측은 했으면 좋겠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아주 멀리서 오는 비는
어느 새벽에라도 당도해서
어두운 지붕을 적시며
마른 잠 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 뿔을 적시며. 창비 2012

 

 

 

유월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7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허공은 하늘로 가득해서

더 올라가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가 종일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고

세상이 새 둥지인냥 오목하고 조용하니까

나는 또 빈집처럼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