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조지훈 다부원((多富院)

생게사부르 2016. 6. 6. 20:42

조지훈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彼我 攻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구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 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량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

 

고개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던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전사(傀儡戰士)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죽음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자도 산자도 다 함께

安住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 다부동: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최대 격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