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彼我 攻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구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 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량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
고개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던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전사(傀儡戰士)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죽음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자도 산자도 다 함께
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 다부동: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최대 격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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