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
초여름
햇볕 뜨거워져서
보온 못자리 비닐 거두어주니
애틋하여라, 거기 연둣빛 어린 모들
모 끝마다 맑은 수정방울을 빛내며
세상에서 가장 이쁜 꿈을 꾸다 들켜선
때마침 솔솔대는 명주실 바람에
부끄런 듯 부끄런 듯 모끝 사운거리며
뭔가 뭔가 지극히 옹앙거리기도 하며
급기야 제 가진 것 무엇인가, 이 땅에서
가장 여리고 순한 몸짓 하나로
섬뜩한 초록, 초록의 들판을
청청청청 열어 젖히는 것이라니
첫사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어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1959. 전남 담양
1984. 실천문학사, '시여 무기여'등단 '동구밖 집 열 두 식구'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훈 다부원((多富院) (0) | 2016.06.06 |
---|---|
성윤석-4월의 끝,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동네 (0) | 2016.06.03 |
이달균-낙타, 발효 (0) | 2016.05.30 |
이규리- 락스 한 방울, 혼자 노는 빛 (0) | 2016.05.29 |
노미영- 물의 역사, 슬픔은 귀가 없다, (0) | 201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