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고재종-초여름, 첫사랑

생게사부르 2016. 6. 1. 00:03

고재종

 

 

 

초여름

 

 

햇볕 뜨거워져서

보온 못자리 비닐 거두어주니

애틋하여라, 거기 연둣빛 어린 모들

모 끝마다 맑은 수정방울을 빛내며

세상에서 가장 이쁜 꿈을 꾸다 들켜선

때마침 솔솔대는 명주실 바람에

부끄런 듯 부끄런 듯 모끝 사운거리며

뭔가 뭔가 지극히 옹앙거리기도 하며

급기야 제 가진 것 무엇인가, 이 땅에서

가장 여리고 순한 몸짓 하나로

섬뜩한 초록, 초록의 들판을

청청청청 열어 젖히는 것이라니

 

 

 

첫사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어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1959. 전남 담양

1984. 실천문학사, '시여 무기여'등단 '동구밖 집 열 두 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