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

스승의 날 유감(3) '스승' '교사' '노동자'

생게사부르 2016. 5. 16. 00:32

'스승' '교사' '노동자'

 

평범(平凡)한 스승은 말을 하고

좋은 스승은 설명(說明)을 하고

탁월(卓越)한 스승은 모범(模範)을 보이며

위대(偉大)한 스승은 감화(感化)를 준다

학생은 스승의 사랑만큼 성장(成長)한다

 

 

사실 요즘 학교현장에서 정년까지 현직을 유지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교직에서 중도하차 하는 데는 여러 가지 개인적 사유가 있을 것입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급격한 시대변화 속의 학생들을 감당하기에 역량이 부족해서,

자녀세대인 젊은이들이 교사자격을 갖춘 상태에서 300-400 : 1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임용고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 등등...

‘담배 피우던 고교생 나무란 교사 학부모에게 폭행당해, 수업 중 화장하는 여학생 지도하던 여교사 학생에게 빰 맞아 ’ 등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학생과 교사간 혹은 교사와 학부모간 폭력이 사회문제화 되는 우리의 교육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등학교, 중학교에서 초등학생으로까지 내려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고요.

 

급기야 ‘교권 보호차원에서 교사에게 폭행 협박 할 경우 학생과 학부모가 의무적으로 특별교육 받도록 법률개정추진’ 하는

기사까지 접하게 됩니다.

물론 그 이슈의 중심에 선 교사는 당연히 자신의 교사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그런 문제를 대하는 학부모, 사회 일반의 반응이나, 언론의 보도내용에서 우선적으로 ‘교사’라는 용어에 대한 인식이

잘 못되어 있거나 편견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연히 교사의 역할에 대한 오해나 곡해도 있게 되는데 일반인은 그렇다 쳐도 독자를 계도해야 할 입장에 있는 언론이

그 의미를 왜곡하게 되면 안타깝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5. '스승'과 '교사', '노동자'


존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스승'에 대한 용어가 교사들에게는 우선 너무 무겁고 힘겹습니다.

그냥 '교사'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 정도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다 치고

'교사'를 '노동자'라 부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나 '스승상’으로서의 교사'라는 전통적 관점의 사람들에게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자신도

교사가 ' 노동자'라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의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에서는 노골적인 반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래 너희들 교사 자체가 노동자라 부르고 그렇게

행동하겠다면 노동판에 일하는 사람 대우하마' 하는 듯 그 용어 자체 때문에 마치 '교사'가 비하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입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념의 직업관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학문하는 선비를 높이치고, 과거를 쳐서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대우받는 직업이며, 땀 흘려 일하는 직업을 천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 사회 이후에는 '노동(정신적, 육체적)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노동자이며

오늘날 대다수 사람이 노동자임에도 우리의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교사가 노동자라는데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지니는 듯 합니다. 

교사에 대한 시대적 관점의 변화만 제대로 이해해도 그런 오해는 일부 불식될 것이며 전교조 교사에 대한 과장된 불신도

일부 해소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일반적으로 교사를 보는 관점은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성직자'관 입니다.
교직을 '성직'이라 보는 전통적인 관점은 교사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직'이기에 '스승'이라 높여 부르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교육자는 세속적 이익보다 정신적 이상과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청빈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도덕적 윤리적이어야

하고 매사에 존경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엔

모든 세속적인 직업생활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소명) 주어진 것이기에 천직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의식도 이 관점이 가장 강하여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 명예와 지위를 무한한 것으로 여겼고,

따라서 사회적인 존경을 받았으며 교직자 자신도 교직을 명예롭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학식과 덕망이 높으면 교육자가 되던 전통시대에 비해 사회가 분업화되고 산업화되면서 막연한 사명감만 가진

성직으로서의 교육자보다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지니고 교과를 지도하고 학생의 생활을 지도해야 하는

 '전문직'이라는 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식을 전달하는 의미의 ‘직업인으로서 교사’ 라는 의미가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다가 학업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학부모 교육수준이 교사 못지않게 높아졌고 학문적인 배움의 제공자가

교사만이 아니고 여러 경로를 통해 학습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것도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상업이나 자본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선생질’로 까지 비하되기에 이르면

교사들은 ‘스승’은 이상이지만 무겁고 힘겨워 ‘교사’에라도 머물고자 하나 ‘선생질’ 이라는 현실 인식에 부딪치게 되면서

자괴감으로 무력해 집니다. 안정적인 직업으로서의 교사 선호도는 여전히 높지만 사실 언제부터인가 교사라는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또한 우리의 교육현실입니다.

세 번째는 물질이 앞서 발달한 서양에서는 중세 이래로 교사를 (정신)노동자로서의 직업이라는 의미가 강한

 '노동직'이라는 관점이 크게 지배 해 왔습니다.
중세 때 발달하기 시작한 서양의 대학은 처음 교수와 학생들의 조합에서 비롯되었고, 학생은 돈을 내고 배웠고,

교수(교사)는 가르친 대가로 봉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사회가 서양 중심으로 발전되면서

교직이 노동직이라는 관점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선비를 이상으로 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일정부분 지배해온 우리사회는 시대적 변화와 상관없이

교사에게만큼은 전통사회의 '스승'상을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여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중에도 노동자라는 관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의 한국사회에서는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 일반의 분위기가 여전히 '교직은 성직'이므로

투철한 사명감을 지니고 매사에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며 '돈'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고,

전교조는 정신적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이익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립되면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교직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현대적 관점 사이에 많은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일반의 시대적 변화와 상관없이 교사에게만큼은 농경시대 '스승'상을 요구하면서 교사를 비난하고 있기도 하고,

또 일부 학부모는 산업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여 교사를 '직업인'으로 더 나아가면 '지식을 파는 장사꾼'처럼 여기고,

또 실제 그렇게 대하는데 또 일부 학부모들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스승'을 요구 하니 그 혼재됨 때문에 학부모 자신들도

혼란 속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교사는 '월급받고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면서도 '스승의 날, 우리 아이를 맡겨 놓고

그냥 있어서 되겠나? 아니면 혹 우리 아이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반응하면서 성의를 표하든 안하든

'마음 불편한' '스승의 날'이 되면서 그 한가운데 있는 교사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서로 청탁을 주고받거나 뇌물을 주고받는

공무원과 같은 부도덕한 '범죄자'처럼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시절에는 '부자'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악시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를 합법적인 미덕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산업사회 이후 (물론 남을 희생시킨 대가 혹은 부도덕하게 쌓은 부가 아니라

정당하고 남보다 부지런히 일해서 쌓은 '부(富)'여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도 극심한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생활인이 되어

경쟁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혹시 교사들에게만큼은 조선시대에서나 가능했던 성직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영역의 교육이나,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만큼은 다른 일반인보다 청렴하고 근검하게

살아 갈 것이 요구되는 게 당연 할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교회나 절이 기업처럼 되고  그에 종사하는 종교인들 중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홍세화씨가 자주 인용한 예시 중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어느 아파트 광고 문구에서처럼

거대한  '자본주의 물결에 떠 밀려가면서 삶의 철학을 지닐 여유 없이 아파트 위치나 평수에 따른 가격이

곧 인간의 존재가치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지, 경제력의 정도가 인격마저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내 금쪽같은 자식만 중요해서 다른 학생들의 인격이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어른들의 사고방식에 우리의 아이들이 희생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좀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서 스승의 날은 없애든지 옮기든지 휴교를 할 것인지

정상일과를 운영하든지 국민적 합의하에 지혜를 모아 나아가야면 좋을 것입니다.

배우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은 자신의 인격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기본 생각을 지니도록

교육되는 학교문화, 사회적 풍토만 합의가 된다면 스승의 날이 있든 없든, 언제로 하든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고,

 

25년이 넘는 교직생활의 경험에 의하면 학교에서 자녀의 행동거지가 바른 경우 그 학부모도 참으로 괜찮은 분일 것이라는 믿음,

'자녀를 인생 최고의 보물'로 여기면서 공을 들이는 학부모치고 자녀가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생일' '결혼기념일' 같은 의미를 만들 듯

'스승의 날'을 딱딱하기 쉬운 학교생활, 교사와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문화로 생각하되

세 가지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스승의 날, 학생들 자신이 감사함을 표하든 표하지 않든 그냥 두고 어른들은 끼어들지 말라는 당부 하나.

'선물'인지 '뇌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진심'이나 '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고마우면 고마운 마음만 표하고

물질은 개입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또 학부형들은 '금쪽같은 내 귀한 자식'이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생활에서도 환영받는 사람이 되도록

자녀를 기르는데 있어 올바른 인성을 지니도록 양육하면 좋은 것입니다.

옛날 속담에 "귀한 자식일수록 매를 아끼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서구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요즈음 서양 사람들은

아이를 매로 다스리려면 어릴 때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가 어디 매 댈 때가 있다고'

'아이가 무슨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하면서 허용적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녀가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도 예사로 생각하고, 자신만 편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서 집단생활에서 따돌리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웬만하면 매는 대지 않으니

말로서라도 끊임없이 일 깨우면서 키워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처럼 논리적, 체계적으로 사고가 안된다 뿐이지 옳고 그름, 해서는 되는 일 안되는 일

다 구분 할 줄 압니다. 
그러나 도덕성이나 가치관의 바른 방향을 잡아 놓지 못한 경우, 생각이 행동으로 습관화 되지 못하면 자라면서

나쁜 습성이 배입니다.

초등 5-6학년, 중학생만 되어도 이미 부모가 자녀를 이기지 못해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되풀이해도

그만 포기하게 되고 나쁜 습성을 지닌 채 부정적으로 자라난 자녀를 위해 평생 따라다니면서

뒷감당을 해야 할 경우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6. 교사와 노동자

산업사회에서 '노동(정신적, 육체적)을 제공하고 임금(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노동자 ’라는 용어의 정의는

중학교 3학년이면 배우고 학생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 체감하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을 때

학생들은 교과서 보다 사회일반의 인식을 따릅니다.

 

땀 흘리고 일하는 육체노동만 노동이며 공부 못하고 가방 끈 짧은 사람이 곧 ‘노동자’ 라는 인식이 은연 중 배게되고

동시에 ‘노동자’는 천하다는 그릇된 공식이 성립을 하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사를 노동자라 하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 한 부분입니다.

사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라면 ‘직업에 귀천은 없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존경받고 당당해야함에도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우리사회는 직업에 귀천을 매기는 풍토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이 아니라 외형적 직업이나

지위에 따라 사람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학생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할 학생들이

근육을 움직여 노동하지 않고 지식으로, 그럴 듯한 말로 땀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나 요령을 배우려고 하는 것은

다 기성사회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어떤 기사가 나오나 보니, " 교사들 끼리 위로하는 스승의 날'과

 '김영란법'과 관련한' 스승의 날' 기사가 있네요.

 김영란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국회와 끼리끼리 주고 받으면서 부당한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들,

'학부모 선물' 문제와 연관지어 호도하는 언론, 여전히 핵심을 비껴가는 내용들입니다.

 

 <부모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아예 주지도 받지도 말라고 정해야 할 텐데, 시행령에서 상한액을 정하니

 마치 그 금액 선에서는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스승의 날 이틀 전에 입법 예고하는 건 선물 주는 분위기 조성하려고 하는 건가?”,

“5만원 미만이라고 했지만 4~5만원 선에서 줘야 할 것 같다”,

 “사실상 스승의 날 소액선물법이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 모 기사 인용

 

아직까지 사회분위기가 쓰레기인지 언론이 어떤 적에 맞게 취재를 한 것인지 ㅉㅉ...

 

'스승의 날' 유감에 관한 제 생각들...평생 촌에서 선생한 사람의 생각이고

 제가 교직에 있었던 동안의 대한민국 주류, 서울 강남 분위기 같은 건 알지도 못 할 뿐더러 알 필요도 없지요.

 

'선진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상일 뿐 현실이 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과연 언제쯤이면...???...

 

개인의 이기심을 벗어 난 사회 공동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는 선진 대한민국을 우리자녀들이 이루겠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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