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유감(2)
교사로, 학부모로 본 스승의 날
3. 학부모로서 입장
그런데 문제는 학부모가 되고 나서의 입장변화가 자신을 모순 속에 빠져들게 하면서 대다수 학부모도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해 보았으리라 여겨지게 되었다.
맏딸로서 하다못해 아는 집을 방문해도 맨손으로 못 가고 음료수라도 들고 가야하고, 다른 사람의 기념일은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불문율로 여기면서 막상 내 생일이나 기념일은 '뭐 많은 날 중의 하나'로 치부할 뿐 별 의미를 두지 않기에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이다.
특히 물질적인 부분에서 부도덕하게 다른 사람들의 지탄이 되는 뇌물, 청탁 등에 대해서는 심할 정도의 결벽증을 지녔으니
스승의 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교사 발령받고 내가 학부모에게 받은 첫 선물이 '계란 꾸러미'나 '고구마 삶은 것' 등인데 그것들은 돌려주지를 못하고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학교 사택 부엌에 가져다 놓고 가면서 누구라고 밝히지 않기에 돌려줄 수도 없거니와
그 후에도 '내가 갖다 놓았다'고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누군지 모르는 학생이나 학부모의'마음을 고맙게 여기면서
먹는 수밖에 도리가 없고, 더 힘내서 아이들 잘 가르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직접 학부모를 대면하면서 받은 것은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요구르트 두 줄이었던 것 같은데, 안 받겠다고
사양했음에도 책상위에 올려놓고 휑하니 교무실을 나가 버리는 바람에 하도 당황해서 그 당시 나이 지긋한 교무부장님께
이걸 어째야 하느냐고 물었고, 우리 부서에 속했던 선생님들께 하나씩 돌렸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상품권 같은 것을 돌려보내서 해당 학부모에게 무지 욕을 먹었던 적이 있다. '우리 집안에도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학생이 성의껏 준비한 건데 그걸 돌려보내서 학생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아느냐?'는 얘기였다.
그 당시 나만 옳으면 된다 싶어서 촌지나 선물을 돌려줘서 욕도 많이 얻어먹기도 하고 했지만 욕이 문제가 아니라
선물을 건넸다가 거절 당한 학부모나 학생의 심정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이기심은 지끔껏 후회와 반성으로 남아 있다.
학부모는 또 그렇다치고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부딪치며 함께 생활해야 했던 학생의 심정을 다독여 주지 못한 것이
나 역시 교사로서 미성숙했던 시절이었고 시행착오의 시절이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스물네 다섯살 때 얘기임에랴...).
간혹 어떤 어머니들은 "어휴, 선생님 실수했습니다"하고 이해해 주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되면서부터 내 자신 스스로 모순에 부딪히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개학하고 담임선생님이 정해진 날
'담임 샘 어떤 분이야? 나이가 많으시니? 여 선생님이야, 남 선생님이야?' '어떤 과목 선생님이야?' '학급 아이들은 어때?'
사실 눈 뜨고 맑은 정신으로 있을 때 대부분 시간을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낸다.
어릴 때나 부모 손이 많이 가지 사실 학교 입학하고 나서 중학교라도 진학하면 집에서는 쉬고, 휴식하고, 자고 가는 곳일 뿐
대개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 아이만 잘 봐달라는 것 이전에 아무 바라는 것 없어도 우리 아이가 성장하는 일년 간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바르게 이끌어 주는 담임선생님 얼굴도 몰라서 되겠느냐는 생각에서 학기 초가 되면 은근 아이를 닥달한다.
'학급에 뭐 필요한 것 없어? 화분 하나 사서 보낼까?' 하고 극성 아닌 극성을 떨게되었다
혹시 길거리나 시장에서 스쳐지나거나 차를 타고 가다 접촉사고가 나서 애 선생님인 줄도 모르고 싸우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맛있는 김치나, 시골에서 올라온 '무농약 웰빙 식품'이라도 접하게 되면
'담임 샘 좀 보내드리면 좋을 텐데' 하는 맘이고 소풍날 솜씨만 있으면 점심도시락 하나 정도 손수 싸 드리고도 싶지만
마음만 있지 솜씨도 없고 애 밥도 겨우 싸 보내는 정도로 그치고 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딸은 한 번씩 요구를 했다.
"엄마! 어린이날 누구 엄마가 학용품 주고, 누구 엄마가 티 돌렸는데 나도 한번 해 주면 안 되요?"
그런게 부러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딸이 중학교 진학하면서 태도가 싹 바뀌었다.
엄마는 뭐 받는 것 칠색 팔색을 하면서 "왜 우리보고는 가져가라고 하느냐"는 것이 그 요지이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잘 봐 달라고' 한다면서 수군거리고 눈치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들들은 더 무심하다. 5학년인지 6학년인가 국사를 배우기에 만화로 된 재미있는 CD가 있어서
혹 도움이 될까해서 학기 초에 보냈는데 연말에 책장 정리하는 사이에서 그대로 나와서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나마 '스승의 날'은 그래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니, 가격 부담되는 건 뇌물처럼 여겨져 선생님 입장 곤란할까 싶어
여름용 양산이나, 녹찻 잔 정도, 아니면 내가 평소 잘 아는 분야가 책이니, 좋아하는 책 두어 권 정도 사서 선물했는데
요 몇 년은 지탄받는 사회분위기 따라, 교사인 나부터 앞장서야 한다 싶어 그나마도 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스승의 날'을 학년을 마치는 2월로 옮기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학부모 맨 처음부터 학년말 마치는 2월에
간단한 선물하는 걸 신조로 삼아왔다.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게 1년간의 노고에 감사함을 담아서 말이다.
물론 직업마다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교사가 어렵다고 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도 하지만 사실 학교에 있는
우리나 교사의 어려움을 알지 누가 정확하게 알겠느냐 싶긴 하다.
교생실습 나와서 한 달 보내고 가는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선생님들은 퇴근시간 정확하지, 휴일에 쉬지, 방학 있어 또 쉬고 체육대회니 학예회니 수련활동 등
아이들 데리고 잘 놀다 보면 월급 나오지 ….
바깥에서는 교사를 비교적 쉬운 직업으로 보고 특히 여교사는 직업 중 최고로 쳐서 딸을 장래 교사로 희망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방학이 되어 자녀 한두 명을 데리고 씨름을 해 본 학부형은 알 것이다.
'왜 늦잠을 자느냐? TV만 보고 있지 말고 공부 좀 하지, 컴퓨터 좀 그만 해라, 왜 그렇게 시내를 싸돌아 다니느냐?
또 돈을 왜 그렇게 많이 쓰냐? 땅을 파 봐라 돈 천원이 나오냐? 부모한테 하는 말투가 그게 뭐냐?
왜 그래 목욕을 안 가려 하느냐? 제발 거울 좀 그만 봐라…'
그렇다. 자라는 학생들은 마네킹이 아니다. 한명 한명이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모두 다르며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훨씬 많고, 무지하게 말 안 듣고,
애먹이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 학생이 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진급이나 졸업을 해 나가는데 그 학생 밑에 달려있는 서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적을 비롯하여 출결, 학생활동, 봉사활동, 특별활동, 계발활동 수상 여부, 학생상담기록부 등등…
그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착한 애든 애를 먹이는 애든 누구나 마찬가지이고 특히 사춘기를 겪는 초등 5~6학년부터
중학교 과정에 있는 담임교사들은 어떤 학생이든 사춘기를 거치기 때문에 다른 학년 교사들에 비해 애를 먹는다.
한두 자녀들이 가정에서 하는 행동과, 동조성이 강한 청소년기 학교에 무더기로 모여 하는 행동들이 다르며,
특히 가정폭력이나 지나친 학업성취에 시달린 학생, 나이에 맞지 않게 허용적이거나 방임적으로 자란 학생들 중에는
학습충동장애, 공격성을 비롯한 반사회성 장애를 지니고 그 표출되는 정도가 심한 학생들이
학급에 몇 명씩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4. 행복했던 스승의 날 행사
전교조가 결성되던 1988-89년 그 당시, 우리는 이미 스승의 날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을 다 돌려보내기 시작했었다.
'선생님! 이거 뇌물 아닌데요. 엄마가 사주신 거 아니고 제가 용돈 모아서 산 손수건 한 장인데 그것도 안돼요?'
아이들의 실망과 낭패감을 마주하며
'선생님은 이미 너희들의 선물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선물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또 마음은 있어도
가져 올 수 없는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다 돌려보내겠다.
그리고 너희들은 아직 돈을 버는 성인이 아니니 너희들의 예쁜 마음을 담은 편지와 꽃 한 송이 정도만 받겠다'고
공언을 했고 그 이후로 그러한 신조를 지켜오고 있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학교장 위주의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학교분위기에 다소나마 변화가 와서 교사들이 주체가되어 학교 분위기를 주도 할때
바람직 했던 "스승의 날' 행사가 기억에 남는다
운동장 조회에서 미숙하지만 '학생회'의 진행으로 기념식이 열려 꽃 달아 드리기를 했다.
이후 재능 있는 학생들이 바이올린과 플롯으로 스승의 은혜를 연주했고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교사들 일부는 열흘 이상 준비를 했던 중창('사계'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으로 아이들에게 답례로 했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사물놀이 공연을 했으며 남학생들과 남선생님들이 축구시합을 했고, 여학생들은 선생님과
발목 묶고 마음 맞추어 걷기를 하여 참여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다 즐거웠던 하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것도 이전에 하루를 행사를 위해 할애하거나 오전수업을 희생시킬 수 있을 때 얘기이고
요즘은 교과목별 연간 수업시수를 지켜야 하므로
'결혼식'을 해서 특별휴가를 다녀와도 그 부족분을 다 보충해야 하는 빡빡한 교육과정 운영되기에
그러한 시간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라 한 시간 정도 전체 기념식, 한 시간은 학급 담임과의 시간
이후 정상일과를 하거나 편지쓰기를 해서 오후에 ' 스승찾기' 행사로 전단계 학교를 찾아가도록 하기도 한다.
입시가 있던 한 해 여중에서 3학년 담임을 했는데 그 다음해 30명 가까운 졸업생이 찾아와
자장면집을 찾아 점심을 함께 먹고, 그 당시 유시민이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네루의" 세계사 편력" 책을 사서 주고
가져가서 돌려 읽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출처 : 교사로, 학부모로 본 스승의 날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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