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정애-흑백사진 속 어머니, 빛바랜 사진 속 어머니-이용범

생게사부르 2016. 5. 8. 16:34

이정애

 

 

흑백사진 속 어머니

 


들풀처럼, 빈손 흔들어
사뿐 사뿐
춤 추시는 어머니
일상의 짐 다 내려놓으셨나 보다
하얀 모시옷에
하얀 코고무신 신고
한 발은 땅위로
다른 한 발은 땅을 딛고
이내 깊은 허공을 날으는가
무슨 곡조이길래
저리도 밝은 웃음일까
호젓한 산기슭
어머니 푸른 소나무 되어
가지마다 맑은 바람 불어오고
빈손 들어 춤추며 갈 수 있는 곳
어디인가, 나도
엄마처럼 따라갈 수 있을까

- 시집『라일락꽃 피는 우체통』(그루,2013)

 

빛바랜 사진속의 어머니

 

김용범

 

이사를 하는 날이면
제일 먼저 어머닌
빨랫줄을 걷어 챙기셨다
이삿짐을 풀고 나서 집안 정
리가 끝나면
옮겨간 새집 마당에
제일 마지막으로
빨랫줄을 거셨다
빨랫줄이 걸리면서부터
새로 옮긴 집의 구도가 완
성 되었다
허공에 걸린 줄 하나로
우리가 살집의 구도가 완
성되어 가는
그런 안정감

 

 

*        *        *

 

 

이 아파트 숲에서 빨랫줄이라니...

앞세워 드러내지 않으면서 어머니의 무게 중심을 은근하게 보여 주는 시입니다.

 

 

어버이날입니다.

시가 친정 네 분 다 돌아가시고, 치매로 이제 누군지 잘 못 알아보는

새 어머니 한분 계실뿐이네요.

 

친정 부모님의 늙으신 모습을 우린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합니다

두 분 다 지금의 내 나이만큼도 늙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어머니는 내가 열 네살 중 2 ,

아침 등교 할 때 도시락 싸 주시던 모습...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머니 나이 설흔 아홉,

저혈압으로 쓰러지셔서 그 길로 이 세상과의 인연 끝맺음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셨던 남편, 배 아파 낳은 6남매 남기고...

그 때 막내는 아직 젖도 다 못뗀 간난장이였지요.

 

아이들 커 나가는 거 다 보시지도 못 할 거면서

유달리 자식 욕심은 많으셨어요.

친정에 이모님이랑 달랑 두 분, 늦게 작은 외할머니를 맞아서

나와 나이가 같은 외삼촌이 태어났지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상여 뒤 따라 가는 자식이 적어서 한(恨)이 지셨다고 자주 말씀 하셨어요.

 

당신 돌아가시면 상여 뒤 줄줄이 따라오게 하고 싶다고도 하셨고요

2남 2녀, 맞춤 했는데 순전히 당신의 뜻으로 2녀가 더 태어나서 6남매

 

아버지도 맏딸인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 가셨으니

맏이인 올케 외에 우리 집 사위나 아이들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알지 못합니다

제삿날 뵌 빛 바랜 사진으로나 알 뿐...

 

성인이 되어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 맛있는 음식 한번 대접 못하고

효도할 기회조차 없이 돌아가신 부모님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종종 나는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고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 잃었던 웃음 되찾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의 사십년, 요즘 사진을 보면 조금 웃고 있더라구요

 

톨스토이가 그랬나요?

한 인생을 살아 온 사람은 모두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취향과 학구열, 무엇보다 건전한 정신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그 유산 덕분에 부모님 일찍 여의고도 6남매 고만고만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진 한장 제대로 찾을 수 없어서 겨우 찾은 사진

저랑 같은 해 태어난 사촌을 안고 셋째, 넷째 며느님이 찍은 사진이 한장 있네요.

사촌이랑은 서로 오빠다 누나다 우긴 기억이 납니다

 

음력과 양력 생일 차가 6개월 나는데 태어난 계절이 봄인지 가을인지

태어난 시가 낮인지 밤인지 잘 몰라서 아버님 세대 마지막 남으신 한 분,

막내 고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여쭤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