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들면
바쁜 듯이 뜰안을 왔다갔다
상처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 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 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 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옛날의 그집
빗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 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 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6.22. 박경리 유고시집 마로니에북스
* * *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 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 박경리-
2008년 5.5 박경리 선생님 돌아 가신 날입니다
내가 일찍 문학의 길을 택했더라면 박경리 선생님 문하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평소 여성이나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분이었지만
살아 생전 못 뵙고...
통영 강구안에서 치뤄지던 장례식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 할수 있었고 마지막 가시는 길,
산양면 장지로 떠나는 상여를 슬프게 배웅 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못 뵈서 참으로 아쉬웠던 분입니다
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다시 태어 난다면 남자로 태어 나실 것 같습니다.
정신세계도 워낙 넓었지만 현생의 삶이 남자 여럿의 몫을 느끈히 암아 내셨기에
특별히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런 것 같네요.
그러나 인간 존재로서의 고독, 외로움...사마천을 생각하면서
사셨다는 얘기 참으로 가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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