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아버지-김용욱, 이상호

생게사부르 2016. 5. 8. 21:41

아버지

                                     김용욱(전주 신흥고 학생)


우리집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머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무척 닮은 아이의 잠자리를 살펴주고는
지친 몸을 방바닥에 부립니다

아침, 그는
덜 깬 눈을 부비며
우리 형제를 학교라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허름한 지갑 속에서
몇장 안 되는
구져진 종이돈을
살점처럼 떼어줍니다

그리곤 그는
일자리로 가서
개미처럼 밥알을
모으며 땀을 흘립니다

그러기를 20여년..
지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힘 부칠 때도 되었는데

오늘도 그는
작은 체구에 축 처진 어깰 툭툭 털고는
우리에게 주름진
웃음을 보이지만

머슴 생활 너무
힘겹고 서러울 때
우리에게 이따금씩 들키는 눈물방울

그 속에 파들파들
별처럼 떨고 있는
남은 가족의
눈물방울들

그 머슴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

 

 

아버지/ 이상호

 

 

깊고 깊은 겨울을 돌아

저 만큼 나가보면

거기 묵묵히 허리 구부려

땅을 일구는 우리 아버지

허리를 굽힌 만큼

별은 더 멀리 달아나

차갑게 얼어 붙어 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가슴에서 별을 놓친 적이 없다

날이 어두울수록

초롱초롱 빛나는 별 하나

가슴 깊이 묻어 두고

묵묵히 땅을 일구는

우리 아버지,

아주 먼 옛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리했던 것 처럼

 

경북 상주/ 82년 <심상> 등단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