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용욱(전주 신흥고 학생)
우리집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머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무척 닮은 아이의 잠자리를 살펴주고는
지친 몸을 방바닥에 부립니다
아침, 그는
덜 깬 눈을 부비며
우리 형제를 학교라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허름한 지갑 속에서
몇장 안 되는
구져진 종이돈을
살점처럼 떼어줍니다
그리곤 그는
일자리로 가서
개미처럼 밥알을
모으며 땀을 흘립니다
그러기를 20여년..
지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힘 부칠 때도 되었는데
오늘도 그는
작은 체구에 축 처진 어깰 툭툭 털고는
우리에게 주름진
웃음을 보이지만
머슴 생활 너무
힘겹고 서러울 때
우리에게 이따금씩 들키는 눈물방울
그 속에 파들파들
별처럼 떨고 있는
남은 가족의
눈물방울들
그 머슴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
아버지/ 이상호
깊고 깊은 겨울을 돌아
저 만큼 나가보면
거기 묵묵히 허리 구부려
땅을 일구는 우리 아버지
허리를 굽힌 만큼
별은 더 멀리 달아나
차갑게 얼어 붙어 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가슴에서 별을 놓친 적이 없다
날이 어두울수록
초롱초롱 빛나는 별 하나
가슴 깊이 묻어 두고
묵묵히 땅을 일구는
우리 아버지,
아주 먼 옛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리했던 것 처럼
경북 상주/ 82년 <심상> 등단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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