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1
수수팥떡과 경단
날이 환해지도록 꿈속에서 사자와
싸우다가 눈을 떴다
집안은 조용하다 식탁과 의자와 소파와
숟가락까지 모두 돈벌러 나가고 아무도 없다
나는 입이 찢어지도록 크게 하품을 하다
입 밖으러 사자가 튀어 나올 것 같아 급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꿈속에서 거의
사자에게 잡아 먹힐 뻔 했다
문밖에는 벌써 우체부가 다녀갔다 최신
청량제인 공기가 소포로 왔다 영국
공기를 나중에 뜯어보자
홈쇼핑 채널을 트니 바깥을
내다보라고 하여 나가보니 하늘에서
칼과 창과 방패가 우루루 쏟아진다
나는 오늘 무엇을 집어들고 이 무기력과
싸울 것인가
우선은 먼지와 벌레하고 싸워보자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하고도 싸워보자
무엇보다 그리고 어제 먹다남긴
수수팥떡과 경단으로 사자의 허기도
막아보자
당나귀
이런집이 있다 구름 안장만
얹어놓아도 힘들다고
등이 푹 꺼지는 게으른 집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다고
방울 소리 울리는 늙고 꾀 많은 집
그래도 그것을 집이라고 나는,
생활을 고삐에 단단히 매둘 요량으로
집 앞 물가에 버드나무도 한 그루 심고
나귀가 좋아하는 호밀의 씨도 뿌렸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호밀 한자루 팔아 거위를 사고
거위를 팔아 양을 사고
양을 팔아 구름을 사면
언제 그런 부귀의 구름 위에 사는 날이
오기는 할까
벌써 버드나무는 지붕보다 높이 자라고
바람은 날마다 호밀의 귀를 간질이는데,
아직도 이런집이 있다
해가 중천인데도 창문에 눈곱이
덕지덕지한 집
집 두 갈밭에 커다란 임금님 귀가
산다고 소리쳐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기척하나 없는
여전히 모르쇠의 집
* * *
' 푸른 시인학교 화요반'
시 布施하시는 月明淨 미영샘께 항상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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