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고영민-식물, 공손한 손

생게사부르 2016. 4. 28. 13:33

고영민

 

식물

 

코에 호스를 꽂은 채 누워 있는 사내는 자신을 반쯤 화분에 묻어 
놓았다 자꾸 잔뿌리가 돋는다 노모는 안타까운 듯 사내의 몸을
굴린다 구근처럼 누워 있는 사내는 왜 식물을 선택 했을까 코에
연결된 긴 물관으로 음식물이 들어간다 이 봄이 지나면 저를 그
냥 깊이 묻어주세요 사내는 소리쳤으나 노모는 알아듣지 못한다
뉴스를 보니 어떤 씨앗이 700년만에 깨어 났다는구나 노모는 혼
자 중얼거리며 길어진 사내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다 전기면도
기로 사내의 얼굴을 조심스레 흔들어본다 몇날 며칠 병실 안을 넘
겨다보던 목련이 진다, 멀리 천변의 벚꽂도 진다 올봄 사내의 몸
속으론 어떤 꽃이 와서 피었다 갔을까 병실 안으로 들어 온 봄볕
에 눈꺼풀이 무거워진 노모가 침상에 기댄채 700년 된 씨앗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다.

<포지션> 2015. 가을호

 

 

 

 

 

공손한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 놓았다

 

*       *        *       *

 

1968년. 충남 서산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2002년 '문학사상' 시 몰입외 9편으로 등단

2012. 제 7회 지리산 문학상

2016. 네번째 시집 '구구'로 제 4회 박재삼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