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이안- 이봐! 규화목...박미향-규화목

생게사부르 2016. 3. 20. 12:56


김이안

 

 

이봐, 규화목
알리바이를 대봐!

 

무감한 이방에는 밤도 깃들지 않는군

화석화된,
쏜살같이 비껴가거나 건너뛰는 기억들이 있지

이봐, 규화목!
뿌리가 대지에 닿아 있지 않군
나무인지 돌인지 가계와 내력을 용케 숨기고 있어
서서히 입을 떼어봐
아버지의 흙묻은 장화를 왜 몰래 담장 밖으로 내던졌나
어머니와 언니들의 누런 속옷은 왜 슬며시 뒤란에 감추었나

소시락 거리는 바람에도 귀가 뾰족뾰족 자라고
작은 빗방울 듣는 소리에도 토끼눈을 떴었지
푸른 물관 타고 야호야호 자라나던 예민한 수액
슬슬 불때가 되지 않았나 이제?
하늘을 향해 나 뒹굴어진 뿌리와 가지와 잎
모두 어디다 숨겨 두었는지

구석 건넌방에 우적우적 찍혀 있는 장화 발자국
방안 가득 검은 구름을 피워 올리는 알코올 냄새
그뒤, 기억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돌이되고 싶었어
너는 짤막한 토끼꼬리를 보인 채 여태 도망만 치는군

이 나이테는 뭐고 이 벌레구멍과 얼룩은 뭐야!
광물질의 토사와 시간이 잠식하기 전까지
거기 네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떠 올려봐!
언제든 붉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축축하고 캄캄한 기억 저편

 

      

    1968년 생. 경남하동 출신. 현 거주 경기도

    2011년 "시평" 신인 등단

 

 

 

박미향

 

 

규화목

 

 

굳는 다는 것은

썩는다는 말보다 더 깊은 바람소리를 낸다

어머니의 뼈는 자꾸 겸손해져서 허리를 굽히셨지만

언제부터였는

몸 깊은 골짜기에서 돌을 만들고 계셨다 의사는

돌의 지층에 쌓인 흔적을 들춰내어

연대와 이름을 붙이고 빛을 쏘아

깨부수자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머리를 가로 저으시며 만류하셨다 어쩌면 돌은

어머니를 기억해내는 징표였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어머니를 찾아 낼 흔적으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따라 병원을 나왔다 가끔씩 밤에

어머니는 우셨고

울음이 흐름 자리는 한 겹 지층으로 쌓여 갔다

밤의 캄캄한 발치에서

시간의 주름들이 지층을 덮었다

 

규화목의 몸엔 나무의 나이테가 있다

나무가 썩지 않는 이유는

슬픔이 오랫동안 바람에 흔들린 까닭이다

 

단 한번이라도

어머니의 말랑거리는 살결을 쓰다듬어 볼 줄 알았더러면

어머니 곁에 누워 굳어가는 바람소리

흥얼 흥얼 끄집어 낼수도 있었으련만

 

 

경북경산 출신, 2013< 박재삼 신인문학상>대상 수상

 

 

 

 

사진: 충북 미동산 수목원 규화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