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4
염소의 저녁
할머니가 말뚝에 매어 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
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
제 뿔로 하루종일 들이 받아서
하늘이 붉게 멍든 거라고
염소는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준다
그러자 등굽은 할머니 아랫배 쪽에
어둠의 주름이 깊어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전에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염소는 생각한다
때죽나무꽃 지는 날
뻐꾸기가
때죽나무 위에서
때죽나무 꽃잎을 부리로
따서 뱉으면서 우나?
뻐꾸기 울음소리만큼 꼭 그만큼
꽃잎은 떨어지네
저 흰꽃,
떨어지면서 그냥 허공에다
서슴없이 수직, 백묵선을 그리네
꽃이 꽃자리 버리고 떨어지듯이
지는 꽃은 땅에다 버리고,
저,저, 허공을 긋는 꽃잎의 행적만
모아두었다가
(나는 국수를 말아 먹어도 좋겠다, 생각하네)
겨울 운장산 기슭에다
눈발은 아마
치렁 치렁 국수다발을 내다 걸겠지만......
때죽 나무꽃 지는 날
때죽나무 위에서
뻐꾸기 우는 그 소리,
꼭 그만큼만 알맞게 썰어서
내 눈속에 모아 두었다가
사진출처: <블로거 다음 바람재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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