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무료한 체류
한 이틀 머물자고 한 계획이
나흘이되고 이레를 넘긴다고 해서 조바심 칠
일이 아니다 파도위에 일정을 긋는
설계란 쉽게 틀어지기도 하므로
저렇게 초원을 건너 왔더라도 허옇게 거품 뒤집는
누떼의 사막에 갇히면
기린같은 통통배로는 어김없이 며칠은 그르쳐야한다
지진이 아니라면 종일 바람 길에나 서서
동도도 서도도 제 책임이 없다는 듯
풍랑에나 원망을 비끄러맨 채 민박집을
무료하고 무료하고 무료하게 하리라
출렁거리던 나날의 어디 움푹 꺼져버린
삶의 세목들을 허허로운 수평으로 복원하려 한다면
내 주전자인 바다는 처음부터 이 무료를
들 끓이려고 작정 했던 것
행락은 끊겼는데 밤만되면 선착장 난간위로
별들의 폭죽 떠뜰썩하다 밤 파도로도 한겹씩
잠자리를 깔다보면 하루가 푹신하게 접히지
그러니 뿌리치지 못하는 미련이라도 너의 계획은
며칠 더 어긋나면서 이 무료를
마침내 완성시켜야한다. 지상에서는 무료만큼
홀로 값싼 포만 또한 없을 것이니 !
따듯한 적막
아직은 제 풍경을 거둘 때 아니라는 듯
들판에서 산쪽을 보면 그 쪽 기슭이
환한 저녁의 깊숙한 바깥이 되어있다
어딘가 활활 불 피운 단풍숲 있어 그 불곁으로
새들은 자꾸만 날아가는가
늦 가을이라면 어느새 꺼져버린 불씨도 있으니
그 먼데까지 지쳐서 언발 적신들
녹이지 못한 울음소리 오래오래 오한에 떨리라
새 날개짓으로 시절을 분간하는 것은
앞서 걸어간 해와 뒤미처 당도하는 달이
지척간에 얼룩 지우는 파문이 가을의 심금임을
비로소 깨닫는 일
하여 바삐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같은 하늘에서 함께 부스럭대는 해와 달을
밤과 죽음의 근심 밖으로 잠깐 튕겨두어도 좋겠다
조금 일찍 당도한 오늘 저녁의 서리가
남은 온기를 다 덮지 못한다면
구들 한 장 넓이만큼 마음을 덥혀 놓고
눈물 글썽거리더라도 등판 저쪽을
캄캄해질 때까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도현/봄날은 간다 (0) | 2016.03.21 |
---|---|
김이안- 이봐! 규화목...박미향-규화목 (0) | 2016.03.20 |
조병화-밤이가면, 노을, 황혼 (0) | 2016.03.18 |
안도현-염소의 저녁, 때죽나무꽃 지는 날 (0) | 2016.03.16 |
조병화- 새 하늘을 찾아서 (0) | 201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