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마산에서 살기

20년도 더 이전 3.15 묘역 가는 길

생게사부르 2016. 3. 16. 22:16

20년도 더 이전 3.15 묘역 가는 길

 

1990년 초중반 사진일지...

1960년대 중반 무학초등학교에 6개월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라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3.15 의거 탑이 있는 맞은편에 3.15회관이라는게 있어
반공영화인지 애국영화인지를 보러 간 기억이 얼핏 납니다.

그 부근에 3.15 희생자를 모신 장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지로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또 직장생활도 타지에서 하다가 1990년 마산으로 다시 돌아오니
그 부근에 "청소년 통행을 제한합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골목이 생겨있고, 3.15 회관 자리는 ...
지금은 중고자동차 매매장이 되어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박정희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5.16'을 혁명으로 정당화 시키면서 <4.19 시민혁명>의 역사적인 의미를 축소시켰고

4.19혁명의 시발점인 '3.15의거' 역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정부에 의해 푸대접 받고 방치되어 온 결과 일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진해에 있는 이승만 별장을 드나들면서 마산은 들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정부 역시 전 정권의 서자인 셈이니 '3.15 의거'가 역사적인 의미를 찾지 못한 것에는 별 다를바가 없습니다.

김영삼대통령 시절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3.15를 '의거'로, 4.19를 '혁명'으로 공식 천명하고 민주묘지 사업이

이루어질 기반이 이루어졌고, 김대중 대통령 정권에서 3.15 묘역 성역공원과 국립묘지로 지정 해 줄 것을 건의하여

현재 위치인 구암동에 영령 성역화 공원내 묘지이장 작업이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가 2000년이고 , 그 다음해 김주열 열사 인양지점에 진혼제를 치르고 기념물이 만들어지고

2002년  3.15 성역 공원이 되었고 국립 3.15 묘지로 지정 승격되었습니다.

 

최근 근무 했던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들의 첫번째 체험 학습장소가 3.15 묘역이 되어 헌화할 국화꽃을 준비하고

학생들이 3.15 묘역 참배 후 체험소감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3.15 정신은 마산 시민정신입니다.

그러나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사 정권이 그 역사적 의미를 폄훼하여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지역사 연구'로 시작했던 시민단체 모임에서 3.15 묘역이 어디 있는지 사람들이 알수 있도록

팻말이라도 붙이자는 의견이 있우선 우리부터 방문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3.15 묘역을 찾아 나선 날, 일부 사진이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롭네요.

3,15 희생자 중에 마산 동중학생이 있었던 것이 기억 납니다. 중학생 희생자여서 그렇기도 하고 그 당시 근무처가

마산동중이어서 그랬던지 지금은 기억이 조금 희미하네요. 20년도 더 된 옛날 얘기니까요. 

 

 

 

 

 

 

 

 

 

 

 

 

        1960년대 3.15회관이 있던 자리는 ' 청소년 통행을 금합니다'  그 앞쪽은 지금 중고자동차 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