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마산에서 살기

마산 화교학교의 존립여부

생게사부르 2017. 5. 8. 00:55

마산화교 학교의 존립여부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중국인 관광객 수가 많이 줄었지만 대학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들과 관련하여 그 친구들, 혹은 가족들의 방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에 갔을 때, 체험학습으로 왔던 7대 고속버스 중 여섯대가 중국인 학생들이었는데

주로 부산소재의 대학에서 어학연수, 교환학생으로 참가하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창동에서도 가족인 듯 한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관경을 자주 봤고 진해 군항제에서도

대만관광객을 포함하여 주변이 온통 중국어로 시끄러웠다는 점으로 볼 때

한, 중,일은 여전히 어쩔수 없는 인연으로 엮인 이웃나라일 수 밖에 없다.

 

경남도민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나의 관심을 끌었다. (2016.4.06)

 

" 개항도시 마산의 마지막 흔적인 화교 소학교가 사라질 위기다.

역사적 의미가 큰 근대 건조물 보존에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기사내용: 창원마산화교협회는 매각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화교 소학교를 팔기로 했다.

학생이 없는 지 8~9년이나 돼 학교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다 운동장을 포함해 2000㎡가 넘는 넓은 땅을

유지·관리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학교 내부는 사람 손이 닿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상태이다.

 

상인전 창원마산화교협회 회장은 "그동안 학교를 살려보고자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선배화교들이 직접 지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수익도 없는데 선생님 월급등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생업도 있는데 언제까지 학교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호소했다.

 

 

 

 

 

중국의 화교들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지만 특히 국내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즈음

청나라 군대가 한국 들어올 때 함께 온 상인이 시초로 알려졌다.

마산에는 1899년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이주했다고 하며 현재(2016년 기준) 도내에는 200여 명이 남아있다.

 

한국전쟁 이전 화교는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전쟁 이후 고향에 가지 못한 화교는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1953년 마산에 정착한 화교들이 자녀를 위한 교육 기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화교 소학교이다.

 

당시 화교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내거나 직접 건물 짓는 데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 학교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165㎡(655평)가량 되는 대지 위에 중국식 건물을 지었다.

 

화교 소학교는 경남지역 유일한 화교학교라는 것 외에 마산이 개항도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적이라는 의미가 있다.

 

개항 이후 항구였던 마산은 과거 러시아·일본·중국 등 외국인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특히 중앙동은 마산의 가장 중심인 곳으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삼광청주 주조장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화교 소학교를 중심으로 화교들이 모여 살았다.

 

 

 

일본인들이 모여살던 삼광청주 주조장 위치에 원룸들이 들어서고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만 남았는데 사전 정보가 없으면 표지석 찾기도 어렵다.

 

 

 

 

화교소학교 매각 소식에 화교 역사, 개항도시 마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화교 소학교를

창원시가 나서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마산문화유산보존회는 "러·일 영사관 등 개항도시 마산의 흔적이 상당수 사라진 상태에서 화교 소학교

는 마지막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학교 입구 '마산화교소학'이라는 한자 가운데 중화민국(대만) 국기의 상징인

청천백일이 그려져 있는데 이런 건물도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천시는 옛 중국 건물을 매입해 자장면 박물관을 만들었고 부산시도 차이나 거리를 만들어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며  "보존 근거가 되는 조례도 마련된 만큼 시가 땅 일부라도 사들여 마산 화교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

으로 꾸며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1월 '창원시 근대 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근대 건조물이란 개항기 이후부터 1960년대 사이 건립된 역사적·건축사적·산업적 가치가 있는 건축·시설물을 말한다.

 

특히 화교 소학교는 창원시 근대건조물 보전·활용 기본계획에 포함돼 있어 시가 의지가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산문화유산보존회 측은 시에서 관리가 어렵다면 수탁 운영할 의향도 있다고 전했다.

 

창원시 문화예술과 문화담당은 소유주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가 열려 마산지역 근대 건조물을 지정하겠지만 화교 소학교는

B등급이라 지정 여부를 확답할 수 없다"며 "운영상 어려움이라면 등록문화재, 경남 기념물 등에 신청해 선정되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개인 사유지이기 때문에 화교협회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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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지정되기 시작하는 ' 근대문화유산' 역시 대다수 일본강점기에 남긴 것들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피지배의 굴욕적인 역사흔적이라 문화재 지정의 당위성이나 시설보존을 위한 예산배정에

부정적인 시각들이 있어 논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반면교사'의 역사도 나름 의미를 지니는 것이고, 역사란 결국 인간들이 살아 온 이야기들이니

글로벌 시대, 외국인과 함께 생활했던 우리조상들의' 관계사'에 해당한다.

 

그런면에서 그 시설물을 등록하여 보존하는 일이 정당성을 가진다.

특히 마산은 근대 항구로 개항 했고 청일의 대립 뿐 아니라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마산포를 조차하려고 했던 역사적 의미가 있고 러일전쟁이 진해 앞바다에서 일어났다는 점

마산은 근대시기 외국과의 교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화교학생들을 받지 않게된 이후 중국어 학원이 전혀 없던 시절, 화교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다.

딸이 초 중학교에 걸쳐 2년 정도, 아들 역시 중국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화교협회에서 관리를 하며

나이드신 분 생활비로 사용된다고 했다.

 

딸은 사성 접어들 즈음 그만두고 스페인어를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딸보다 먼저 중국어를 시작한 친구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중국어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북경대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중국어 교사를 하고 있는데 초등 4학년 시절부터 오랜기간 중국어를 해 와서

대학시절 화교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중국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   

 

나로서는 마여고 시절, 부근에 그런 학교가 있다고 알고만 있었고 실제로 가 보지는 못했다.

대학 시절  '세계민속'을 소개하는 학교축제에서 중국접시춤을 배우기 위해 대구에 있던 화교학교를 처음으로

 가 보게 되었는데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의 커다란 초상화가 전면에 걸려 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요 몇년 전에는 함께 근무한 적이 있던 미술선생님이 그 장소를 빌려 도자기작품 작업실로 사용했다고

알고 있다.

 

중국인들의 생활공간이었다는 선입견, 화교들이 어디서나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경제공동체,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살기에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입장, 오히려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그 역시 우리 땅에서 생활하면서 우리의 민초들과 관계한 역사의 한부분이기에

 한.일 관계, 한, 중관계, 한.미관계처럼 '관계사"로 규정하여 보존하면 좋을 것이다.

지자체나 위탁사업자가 역사유물관으로 해도 좋지만 가포에 버스계류장을 그당시 모습 그대로 살려

' 프리핸즈'라는 커피숍 공간으로 특색있게 살려낸 것처럼 카페, 레스토랑을 포함하여 중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살아 있는 생활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경제성 부분이 관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