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 주택
지하련 주택은 임화와 지하련의 집은 아니지만(지하련 오빠 집)
자주 드나들었고 , 당시 귀하던 여류 소설가의 작품이 네편이나 잉태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의 결말만큼이나 참혹했다
6 .25의 책임을 물어 남로당 계열을 숙청할 때 임화 역시 미 간첩이란 죄목으로
1953년 8월 처형 당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만주에 있던 지하련은 평양으로 내달려 왔지만 구명도 못했고
치마끈도 추스러지 못했을 정도로 실성한 여자가 되어 헤매다녔지만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몇군데 교화소를 전전하다가 지하련 역시 50 즈음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다.
' 집' 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빨리 망가진다는 건 대부분이 아는 사실
1936년 지어졌다면 84살, 한 일생으로 치면 돌아가실때가 되긴 했다만
서슬퍼런 일제치하 눈에 두드러진 부잣집으로 주목받았을 텐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들이 모여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을...
서양식 거실에 붙박이 장이 잘 갖추어지고, 나선으로 올라가는 2층 계단,
이층에서 창을 통해 잘 가꾸어진 정원을 내려다 보고 있자면
운치가 있었을법도한데
그 시절에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집이었지 않은가
손질만 잘 되었더라면 현대주택으로도 별 손색이 없었을 집은 화재와 관리부재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한때 여류 소설가 작품이 네편 이상 집필된 공간인데...
대문을 들어서서부터 돌보는이 없이 버려둔 집으로 표가 나더니
현관 입구로 들어서자 고양이와 개가 무례한 침입자들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층 방들은 화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벽면이 마치 한폭의 추상화 같았고
거주하던이들이 불탄 세간을 두고 가기도 했을테고 노숙인들이 머물기도 했던지
신분증이 통째로 든 지갑이 나오기도 했고
손질은 되지 않았지만 정원의 위용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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