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발자국은 신발을 닮았다/ 이원

생게사부르 2020. 11. 11. 13:09

발자국은 신발을 닮았다 / 이원

 

 

발을 넣으려는 순간 왈칵 어두운

현관의 두 짝 신발이 축축하게

제 몸을 다 벌리고 있다

허공에 있던 발을

내리고 주저앉으니

공기의 냄새가 비어 있다

신발 안을 들여다 본다 꾹꾹

몸이 걸었으므로 길이 되어버린

마음이 우글우글하다

신발을 굽어보던 빈 몸이

뻣뻣해 벽에 몸을 기댄다

길이 되지 못한 벽이 움찔거려

기댄 벽이 무겁다 세계의

어디서나 출입구는

입과 항문처럼 뚫여 있다

두 발로 단단한 바닥을

딛으며 다시 일어선다

(새삼 발자국은 신발을 닮았다!)

신발 속으로 현실의 발을 집어 넣는다

그 속은 아득하고 둥글다

한 발을 살짝 문 밖으로 내민다

덥썩 세계의 입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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