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단풍여자 고등학교/윤동재

생게사부르 2020. 11. 2. 03:48

단풍여자고등학교/윤동재

 

 

 

어느 시도에 있는지 아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어느 해 가을 아침 직원조회 때

마이크를 잡고

오랜만에 한 말씀 하시기를,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교정에 떨어져 있는 단풍을

누구도 쓸어 담지 마시오

나무에 붙어 있는 단풍이든

땅에 떨어진 단풍이든

단풍 한번 눈여겨보지 않은 학생이

어머니가 되거나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지도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하고 등골이 오싹해요

교장선생님 말씀을

단풍들도 전해들었다는 말일까

그해 가을 우리나라의 단풍들이 모두

그 여자고등학교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 여자등학교는

단풍여자고등학교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단풍여자고등학교라 불리고

있습니다

 

 

 

*     *     *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어디 ' 단풍' 이라는 지명이 있고

정말 단풍여고가 있는 줄 알겠습니다.

 

단양, 영풍, 풍기...

 

이 시기 교장선생님들은 유학이 몸에 밴 선비 같은,

좀 고지식한 분들이 많았는데 문학교과를 가르쳤거나 조금은 낭만적인 교장 선생님이셨던 듯 합니다

 

시인은 1958년 출생에 역사 전공입니다. 고려대 한국학 연구소 근무하시는 분인데

시를 너무 쉽게 쓰시네요. (부럽 ^^)

 

학문이든 시든 정말 고수들은 아이건 노인이건 누가 읽어도

알 수 있게 쉬운 말, 쉬운 언어로 소통하신다는 말에 딱 맞는 분이시란 생각,

맑은 동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고시절, 교문 입구 작은 동산이 특별구역이라 다행이었습니다.

가을이면 쌓인 낙엽을 모아  이효석의 ' 낙엽을 태우면서' 분위기를

흉내내곤 했거든요.

 

1970년대 중반이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라 공부를 빡시게 시켰지만

단풍 한번 안 보는 여학생은 없었을 듯 합니다

교실 앞 금목서가 진동을 해서... 아이들이 가지를 꺾어 그 향기를 편지봉투에 넣어

부치고 했던 기억

 

' 제군들! ' 이라고 호칭하던 덩치 큰 한문 선생님이셨는지 정확하지 않은데...

 

' 나중에 결혼할 때 신랑될 사람이 와서 성적표 떼어 본다.

성적 나쁘면 좋은데 시집 못 가! ' 하시면 이구동성으로

' 그런 사람한테는 시집 안 가요!' 하던 여고 친구들 생각 납니다.

 

저는 좀 대책없는 낭만주의에, 자유주의자였던지

  

' 세대가 함께하는 공감적 사고와 생활방식에서 늘 열외' 였던지 이 나이면

남들은 다 겪고나서 식상할 현실 생활을 새삼스럽게 습득하고 있는 게 많습니다만...

 

 

"가슴 속에 깨달음이 넘치면 절로 글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구태여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 살아 움직이는 빛을 발한다." 혜강 최한기의 말

이다. 나는 이 말을 늘 마음에 새기면서 시를 쓰고 있

.

 

시는 밥이다.

시는 물이다.

내 시도

배고픈 사람의 밥이 되기를

목마른 사람의 물이 되기를

 

-시인의 말 중에서 -

 

 

- 윤동재 시집 <<대표작>>(지식산업사. 2008) 중에서-

 

 

1958년 경북 청송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82<<현대문학>> 시 추천완료.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고려대학교 강사.

 

<시안>편집국장

*지금까지 낸 책:

학술서 <<한국현대시와 한시의 상관성>>(지식산업사, 2002).

시집 <<아침부터 저녁까지>>(현대문학사, 1987). <<날마다 좋은 날>>(문학아카데미, 1998)

외 동시 관련 어린이 관련 책 다수입니다.

 

 

 

 

 

지리산 뱀사골 입구

 

이제껏 사진 찍은 모습을 보니 사진마다 밋밋하게 일자로 경직,

출발하면서 딸에게 단풍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한터라

어색하지만 안 하던 짓을 해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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