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신정민
사과는
사과꽃에 앉은 별의 더듬이가
맨 처음 닿은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
바람이 스쳐간 곳,
햇볕이 드나들며 단맛이 들기 시작한 곳,
맨 처음 빗방울이 떨어진 곳
사과는
먼 기찻길에서 들려온 기적소리,
사과의 귀가 맨 처음 열린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
익어가는거야,
씨앗을 품고 붉어지기 시작한 곳에서
사과는 썩기 시작한다
썩고 있는 체온으로 벌레를 키워
몸 밖으로 비행을 꿈꾼다
온 힘을 다해 썩는 사과는
비로소 사과가 된다
전북전주
2003 부산일보 신춘
2008 꽃들이 딸꾹, <애지> 시선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속으로/ 박명숙 (0) | 2020.10.29 |
---|---|
싱싱한 죽음/ 김희준 (0) | 2020.10.25 |
손가락 선인장/ 정성원 (0) | 2020.10.14 |
에덴의 호접몽/김희준 (0) | 2020.10.12 |
깊은 개념은 얕은 문학시간에 다 배운 것 같아요/정성원 (0) | 202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