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맨 처음/ 신정민

생게사부르 2020. 10. 17. 22:26

 

 

 

맨 처음/ 신정민

 

 

사과는

사과꽃에 앉은 별의 더듬이가

맨 처음 닿은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

바람이 스쳐간 곳,

햇볕이 드나들며 단맛이 들기 시작한 곳,

맨 처음 빗방울이 떨어진 곳

사과는

먼 기찻길에서 들려온 기적소리,

사과의 귀가 맨 처음 열린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

 

익어가는거야,

 

씨앗을 품고 붉어지기 시작한 곳에서

사과는 썩기 시작한다

썩고 있는 체온으로 벌레를 키워

몸 밖으로 비행을 꿈꾼다

온 힘을 다해 썩는 사과는

비로소 사과가 된다

 

 

 

 

전북전주

2003 부산일보 신춘

2008 꽃들이 딸꾹, <애지>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