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친애하는 언니/김희준

생게사부르 2020. 9. 22. 15:42

친애하는언니/김희준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

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 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 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제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

사는 누워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

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

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

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이불과 옥상과 돌담 그리고 유채꽃과

산새와 먹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한 때 비가 내리고, 물의 결대로 살 수 없다면 늙지 않은 그

곳으로 가자 소매 안에 훔쳤던 벚나무에 대해 사과하는 밤,

나무의 탯줄이 보고 싶었다 뭉텅이로 발견되는 꽃의 사체를

쥘 때 알았던거지 비어버린 자궁에 벚꽃이 피고 사라진 언

니를 생각했어 비가 호수속으로 파열되는 밤에 말이야 물

속에 비친 것은 뭐였을까

 

언니가 떠난 나라에선 계절의 배를 가른다며? 애비가 누

구냐니, 사생하는 문장으로 들어가 봄의 혈색을 가진 나를

만날거야 떨어지는 비를 타고 소매로 들어간 것이 내 민낯

이었는지 알고 싶어

 

파문된 비의 언어가 언니에게서 나왔다는 걸 알기까지 얼

마나 걸릴까?

 

 

                        - 계간 ' 시산맥' 2017. 가을호

                                  특집 <어느 별에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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