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사랑
연초록 껍질에
촘촘 가시를 달고 있는
장미꽃을 한아름 산다
네가 나에게 꽃인 동안
내 몸에도 가시 돋는다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
꽃망울에게 싱긋
윙크를 하자
눈물 한방울 떨어진다
그래, 사랑의 가시라는 거
한낱 모가 난 껍질 일뿐
꽃잎이 진 자리와
가시가 떨어져 나간 자리, 모두
눈물 마른 자리 동그랗다
우리 사랑도, 분명
희고 둥근 방을 가질 것이다.
더딘 사랑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 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달이나 걸린다
내품에, 그대 눈물을
내 가슴은 편지 봉투 같아서
그대가 훅 불면 하얀속이 다 보이지
방을 얻고 도배를 하고
주인에게 주소를 적어와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들이는 동안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면
봉숭아씨처럼 달려 나가는 거야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갖고 있구나
전자렌지 속 빵 봉지처럼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우리의 사랑
내 가슴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 슬픔마저 알알이 여물수 있지
그대 눈물의 향을 마시며 나는 바래어 가도 좋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그대 그늘에 다가 갈수 있는
내 사랑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의 온 몸에, 내 기쁨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을로 갈거야
긴 장마를 건너 햇살 눈부신 가을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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