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1.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불고 가신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신 오지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나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ㅎ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 *
한국대표시인 未堂 서정주 시의 매력, 입에 착착 와 감기는 감칠 맛 나는 우리말,
가히 언어를 벼리는 장인(匠人)으로써 언어를 다루는 연금술사
개성있는 구조와 서정성, 한국적 풍경과 정서를 그렇게 아름답게 그려 내는 분이
동시에 일제의 가미가제를 찬양하고 독려하며, 이승만 전기 집필,
월남전 파병 지지, 전두환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지어바치는
권력에의 해바라기적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이전의 표현을 빌자면 오호 통재라~ 애재라~ 입니다.
창씨개명 이름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의
친일 작품중에 '마쓰이 오장송가(松井伍長 頌歌)를 소개 해 봅니다.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만리런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누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 한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구국대원
구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에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없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군함!
수백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뺐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 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리테만은 어데런가
몇천길의 바다런가
귀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1944년 12월9일자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림>
레이테 만(Leyte Gulf)은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의 필리핀 해가 들어가 있는 만으로
1944년 10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상 최대 규모로 벌어진 4개의 독립적인 전투를 레이테 해전이라고 하며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거둔 핵심적 승리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전진에 의해 남방지원대와 본토와의 연결이 끊기게 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일본 함대는
여기서 모든 것을 걸고 최후의 도박을 벌였습니다!
1943년 부터 시작된 미국의 잠수함 공격으로 식량자급도가 떨어진 일본, 도시공장 근로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일본제국의 '아시아 대공영'을 위한 위대한 천황의 전투에 옥쇄(玉碎:공명충절을 위해 개끗이 죽음)라는
미명하에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사지로 내 몰았지요.
가미가제를 숭고한 애국행위로 미화하여 삶의 혈기가 충천한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자원을 하는 분위기.
신념의 쇄놰라 할까요? 젊은이들 중에 외아들은, 효와 충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하고
용감히 자원을 하지 않는 경우 비겁자로 비난을 받게됩니다.
조선인들은 사실 반도인으로 차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는 황국신민으로 추켜 세우며 자원을 하게하는데 친일 문인이나 지식인들이 앞서서
독려하고 선동합니다. 춘원 이광수, 서정주, 모윤숙, 노천명 같은 문인들,
조선임전보국단, 조선교화단체연합회,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경성기독교연합회, 조선부인연구회
같은 단체에서 활동한 고황경(서울여대학장), 김성수, 김활란(이화여대총장), 황신덕 같은 교육계 인사들
이때 미당 서정주 선생은 아직 스물아홉, 설흔정도의 나이입니다.
그 새파란 젊은이들이 죽어 나갔지만 시인은 해방후에도 삶의 양지를 찾아 천수를 누렸고,
'시인들을 신민으로 거느린 시왕국의 왕'으로서 영광을 다 누리다 돌아가셨네요.
위 시에서는 '원수의 영미 항공모함' '노란머리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의 표현이 나오는데
아시안 게임 할 때 문학정신 창간호 권두언에서는 ' 아직 철이 덜든 학생이나 공장의 근로자들이 군중심리를
선동하여 ....우방 미국까지도 따 돌리고..." 원수에서 우방으로 바뀌는 게 손바닥 뒤집듯 합니다
하긴 세상이 변했으니까요. 아드님 두분이 미국에서 의사, 변호사로 자리잡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그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 할 줄 꿈에도 몰랐다. 못가도 몇 백년은 갈줄 알았다'고 뒤에 고백 했습니다.
최근에 '움베르토 에코" 작가자 석학이 돌아가셨을 때 언론들은 "이 시대 대표적인 지성" 이 타계하셨다고
아쉬워하고 그의 작품이나 어록들이 독자나 네티즌들에게서 회자되곤 했는데
미당 선생님은 시는 잘 쓰셨으나 지성인은 못 되셨던 모양입니다.
그의 아름다운 시에 비해 친일-우익-보수 권력을 쫓아 어용쪽 문인으로 한국근현대사의 암울한
문학적 계보의 맨 앞에 서기를 주저치 않았던 미당선생
그의 시를 좋아하는 만큼 그의 인생행적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주로 제자, 그를 통해 등단 한 사람들)은
'시인은 시인으로써만 그 삶의 궤적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그를 옹호하고는 하는데
글쎄요? 후세인들이 역사가 결코 동의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학이나 예술은 단순히 입이나 손끝에서 기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철학
인생경험의 바탕을 이루는 "정신, 영혼" 의 울림이기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소에 자신의 전부이다시피 한 詩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맑은 시어(詩語)로 노래해 놓고
그에 일치되지 않는 오욕의 삶을 살았다면 '영혼이 담기지 않은' 진정성 없는 작품이고 언어의 기교였다고
해석 할수 밖에요.
한 개인의 삶에서 '역사의식'이 부재 한 탓이기도 했고, 친일 독재부역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이 시대 풍토는 그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민족을 배신한 그러한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뉘우치고
사죄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했다는 것, 개인으로나 사회시대적으로 봐서 또 하나의 안타까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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