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소유 약간의 거리

생게사부르 2019. 11. 2. 20:49

 

 

약간의 거리/ 박소유

 

 

 
꽃과 꽃 사이가 쓸쓸하다고 당신이 말했을
때 나는 약간 어깨를 으쓱했다 첫사랑과
첫눈, 그 '첫' 때문에 쓸쓸했던 나는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 붉은 꽃, 흰 꽃이 어느
쪽으로든 꺾일 수 있게 만발했다고 함부로
꺾을 수 없듯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세상의
모든 방향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 그 거리는 오래 되었으나
낯설고 이상한 것이 없어진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 더 이상 거리낌이 없게 되었을 때
빛나는 것은 항상 길 건너편에 있었다 햇빛
속에 휘날리다 사라지는 눈발 같은, 몸 둘바
없다는 말...약간 삐긋했을 뿐인데 생에서
멀어지는 순간에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
꽃의 직전은 그 어떤 직후보다 쓸쓸할
거라는 걸 미리 안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거리를 사랑했으므로
당신은 거기 혼자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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