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시인 앞/ 고영민

생게사부르 2019. 9. 16. 11:45

 

 

시인 앞/ 고영민


꽃은 시인 앞에 와서 핀다
꿀벌은 시인 앞에 와서 날개짓한다
잎새는 시인 앞에 와서 지고
군인은 시인 앞에 와서 담배를 꺼내 문다
흰 고양이는 죽는다
시인 앞에 와서
연인들은 시인 앞에 와서 입을 맞춘다
아이들은 시인 앞에 와서 뛰놀며
노인은 시인 앞에 와서 운다

누가 누구를 버린 걸까
무게를 못 견딘 나뭇가지처럼

누운 풀과 검은 돌들
긴 해바라기 꽃밭

 

 

 

*       *        *

 

 

예사로운 일상들인데

너무 예사로와서

일상이어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지만

의미를 두지 않지만

하필이면 시인은 그런 곳에만 눈길이 머물러서

 

누가 누구를 버린 걸까요?

 

예사로운 일상을 넘어서는 일들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이나

상식을 벗어난 억압이나 인권 침해

집단이나 국가적 폭력에 무기력한 개인의 처절한 희생에 이르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버거워하면서도

문학을 놓지 못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네요

 

누구에게는 종교가 그렇고

누구에게는 권력이 또 누구에게는 재력이

죽어라 쌓아가는 사회적 스펙이나

허울뿐인 명성일지라도 자신이 믿는다면...

 

그렇게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물방울에 갇힌 데이지든

투명하게 빛나는 데이지든...그건 사람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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