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소란 습관

생게사부르 2019. 9. 15. 10:16

 

습관/ 박소란


 

 

돌아서면 머리카락이 자라고 손톱이 자란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마다 머리를 자르는 습관이 있다
손톱을 깎는 습관이 있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슬픈 것을 보게 된다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영정에는 유독 먼지가 잘 앉고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어서 말끔히 닦은 다음 보자기
에 싸서 장롱 깊은 곳에 넣어두어야겠다,
영정을 껴안고 흐느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머리카락이 자라고 손톱이 자란다
조금도 쉬지 않고 자란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마다 청소를 하는 습관이 있다
걸레를 들고 방바닥에 널브러진 새카만 머리카락을 주
워들면
신기하기도 하지

그 가닥가닥 돋아난 팔고 다리
눈 코 입

죽은 줄 알았는데, 웃고 있다

 

 

 

*        *         *

 

 

나도 이와 같은 시를 쓴 적이...

시가 뭔지 모를 때 너무 직설적으로 써서 시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내용은 흡사하다

 

제목은 ' 살아 있다는 것은' 연작 시리즈였다

 

 

매일 자라나는 머리 카락,

떨어진 머리카락을 방바닥에서 발견한다는 것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는 한 방법으로

머리를 자르거나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한다는 것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삶이 지치고 힘들어 질때

 

자기 나름 삶을 이어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것

돌아가신지 오래 된 순서대로

영정사진이 장롱 깊숙히 보관되어 있다

 

살아 있는 한

습관은 내게 붙어 꼭 함께 다닌다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