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신용목 슈게이징

생게사부르 2019. 9. 11. 14:32

 

슈게이징/ 신용목


 

잠수를 배운다. 푸른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바닥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
물에게 목을 축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호흡으로 하늘의 허파를 계속 늘리듯이
구름의 자세를 추측하며

비행을 배운다
불쑥불쑥 그날의 내가 나타나,
비 오던 날 
파란 신호등이 횡단보도를 밟으며 점멸하던 날, 섬에 닦은 거대한 활주로를 보면
배를 가르고 바퀴가 튀어 나오지,
그날,
물이 하늘을 날아보려고 구름이라는 이름을 얻는 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잠기고픈 구름이 비라는 이름을 가진
다는 걸 알아버려서
나는 이름을 바꾸었다,

다른 곳으로 가 보려고.

이곳의 비가 저곳의 눈인 것처럼, 구름이라고 하면 물은 하늘
에서 사라진다.
비라고 하면 물은 빗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눈이라고하면 비
는 겨울 속으로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가면 다른 곳은 사라지겠지. 이름을 부르면 나
는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사라지고 나면 어떤 이름으로 잊혀져도 좋은데,

공중의 활주로

물속의 바퀴로

불쑥불쓱 뛰어드는 그날의 나 때문에 일기를 쓰면 편지가 된
다. 반성이 있는 일기와 추신이 있는 편지가 된다. 헤어지자고
말하고나서는 보고 싶다고 말한다.


- 모든시, 2018.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