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장마/ 성영희

생게사부르 2019. 7. 20. 08:18

 

장마/ 성영희


비 내리는 강가
청둥오리 한 마리 머리를 쳐 박고 연신 자맥질 중이다
뒤집힌 강물 속에서 무엇을 솎아낸 것일까
아름다운 지느러미와 꼬리를 삼키고
물갈퀴마다 꽃이 피는 지금은
산 허리도 부푸는 장마철
물이, 물의 것들이 날아 올라 풀숲에 든다
물이 쏟아지는 철인데
날아가는 물이 대수롭냐고, 빗줄기에
울음의 곡을 붙인다

저 장마의 바깥에는
염천炎天 들어 앉은 마음들이 또 몇이나
물 속을 뒤지고 있을 것인가
빗물로 와서 강물로 흘러가면 그 뿐인
그러나 마음 한번 독하게 먹으면
세상도 발칵 뒤집고 마는
저 작은 빗방울들

슬픔이란 범람과 혼탁을 거쳐
가을 강물 속 같이 투명에 이르는 일
쏟아지는 수억 만 개의 과녁을 다 받아 내고
짧은 파장으로 범람하는 일
퉁퉁 부운 이름들만 물안개처럼 떠도는
비의 계절을
자맥질로 뒤지는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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