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궁전/ 성영희
폐허를 두들겨 빨면 저렇게 흰바람 펄럭이는 궁전이 된다. 매일 바람으로 축조되었다 저녁이면 무너지는 여름궁전은 물에 뿌리를
둔 가업만이 지을 수 있다 젖은 것들이 마르는 계단, 셔츠는 그늘을 입고 펄럭인다
몸을 씻으면 죄가 씻긴다는 갠지스강 기슭에서 두들겨 맞다 이내 성자처럼 깨끗해지는 옷들, 어제 죽은이의 사리를 계단에 펼
쳐 놓고 내일 태어날 아이의 이름은 헹구는 도비왈라들, 거품 빠진 신분들이 명상처럼 마르고 있다
이 강에서 고요한 것은 연기뿐,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밤이면 강물은 다시 태엽을 감고 소리를 잃은 것들은 물결이 된다 화장장의 연기도 무시로 강물 따라 흐른다. 앞 물결과 뒷 물결
이 섞여 흐르는 이곳에 오늘이 있고 산자만이 빤 옷을 육신에 걸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물소리를 베고 잠들면 잠결에도 물이 흐를까, 사내들의 팔뚝은 강 기슭을 닮았다. 끝없이 궁전을 세우지만 그 안에 들수 없는 불
가촉 타지마할, 하얗게 펄럭이는 그들만의 궁전이다
* 충남태안
2017 경인일보, 대전일보 신춘 등단
시집: <섬, 생을 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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