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혜순 나비-열 하루

생게사부르 2019. 7. 17. 07:57

 

나비
   - 열 하루/ 김혜순


네가 이미 죽은 사람이란 걸 깨닫는 방법은 이와 같다

유리창에 대고 입김을 불어본다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탄생이란 항상 추락이고
죽음이란 항상 비상이라 하니
절벽에서 몸을 날려본다

매일 이어지는 지면紙面을 향한 추락인가? 비상인가?
한 쪽 발로 선 나비가 다른 쪽 발엔 빨간 잉크를 찍어 종이에
편지를 써 본다

엄마: 설마 너 태어나자 마자 웃는 거야?
너: 아니 웃을 수 있는가 보는 거야!

추락이 시작되면 비명의 비상도 시작한다
심연의 가장자리가 무한히 떠 오른다
하늘에서 푸른 물방울 하나 지펴질 때마다
네 날개가 물위에서 퍼지는 파문처럼 일시에 지펴지고
너는 이제 너에게서 해방인가!

네 발에는 곧 발자국이 없다
네 목소리에는 곧 소리가 없다
네 기쁨에는 곧 호흡이 없다
네 편지에는 곧 이름이 없다

너는 눈물 속의 소금처럼만 하얗게
너는 바람 속의 하품처럼만 아아아아

너는 지금 너 중의 하나를 만나는 중인가?
너는 곧 사생활조차 없는 현기증이다

너는 이제 너무 가벼워서 절대로 추락할 수 없는
오직 저 심연 맨 꼭대기 층의 파문에 이은 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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