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

끝나지 않은 친일 독재 부역

생게사부르 2015. 11. 28. 22:28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친일독재 부역

 

 

10년도 더 이전에 썼던 묵은 글을 다시 꺼집어냈다.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 하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엄지 발가락을 잘 못 건드려 간혹 곪을 때가 있다. 모질지 못하여 대충 처리하면 덧나고 또 덧난다.

다시 덧나지 않게 새 살이 차서 완전히 아물도록 하려면 한 마음 먹고 곪은 부분을 완전히 빼내야 한다.

 

물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건 순리다. 그러나 정권은 아직도 친일세력하에 있다.

당연하게도 지방 구석구석까지 친일의 유령이 살아있어서 시도때도 없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활개를 치는 느낌이다.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을 들어가다 박정희, 육영수 사진이나 업적이 부쩍 많이 도배가 되어 있음 알았고,

올 가을의 지자체 축제마다 ' 호국보훈' 부스를 필두로 어용 관변단체의 부스가 많아졌음을 보았다. 

국회나 지자체 예산에서 자기들 편에 예산을 배정하고 비판적인 단체는 일체 예산을 배제해 버린 일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마산 국화축제에서 '시민 대동제가' 열렸고 이은상, 조두남, 김동진의 문화 예술적 브랜드를 다시 살리고자

의기 투합하는 분위기이다. 기존의 선양단체에서 '재경 향우회'로 주최가 바뀌었을 뿐 이전의 역사인식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다.

 

이전의 글을 다시 올려보는 이유이다.

 

 

 

사진: 마산음악관, 조각공원 작품

 

 

기념관 건립, 인물선정 제대로 했으면... 

 

 

올해로 해방을 맞이한 지 약 60여년이고, 3.1운동이 일어난 지는 85년째가 된다.

사람의 일생으로 치면 해방 이후 회갑을 맞이한 셈이고 3.1운동으로 치면 한 인생이 삶을 마감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럼에도 아직 친일마저 제대로 청산을 못하였고, 근대 파행적으로 흘러 온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병준의 후손이 반환 될 부평미군기지 땅에 대해 소유권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어쩌면 이전의 예에서처럼

승소를 할 수도 있는 입장이며 국회에서는 "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를 못했고,

친일 인명사전 발간을 위한 국회 예산도 전액 삭감되었다.
그런 한편에서는 그 소식을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접하고 국민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당초 예산을 능가하는 국민기금이 모였다고 한다

또 최근 한 연예인 기획사에서 "종군 위안부"를 소재로 젊은 여배우의 반 누드화를 찍은 것이 일파만파의

사회적 반감을 가져와 그 여배우는 연예계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성부 시인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라고 "봄"이라는 시에서 노래 한 것처럼 "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오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긴 한가보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도 그러한 예가 있었다. 친일과 독재부역을 했던 "이은상 문학관 "건립과 "조두남 음악관"건립을 두고

수년을 싸워서 마침내 " 마산 문학관 "과 "마산 음악관"건립으로 일단락을 맺게 된 것이다.

시민단체가 마산시와 시 의회, 보수적인 문학단체와 싸워서 마침내 승리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두 건물의 명칭 변경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번 결정은 두 예술가의 문학적, 음악적 예술성을 떠나,

개인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기초한 것으로 매우 바람직하다."는 지역 시민단체의 논평에서 보듯이

지난 역사의 과오에 대해 종지부를 찍는 것이며 지역 문화권력층의 판세를 바꾸는 한 계기로 작용 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 청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지역사회의 이러한 변화들이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 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역사회의 친일 청산에 대한 작지만 큰 승리의 시민운동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덧 붙여보면 이렇다.

이웃한 도시 창원에 비해 문화 · 예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마산시민들은 상대적 위화감으로 주눅 들어 있다.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공원 하나 제대로 없던 차에 작년 그런 공간이 생겨 좋아 했었는데,

개관식 날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밀가루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 일로 7명이 연행되었다가

결국 시민단체 회장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미 친일파 시인으로 밝혀진 윤해영의 시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 기념관 개관식이 말썽이 된 것이다.

조두남씨에 대해서는 확증적인 기록물은 없지만 여러 상황과 함께 활동했던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친일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일부에서 기념관 건립 반대의사를 계속 제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산시와 보수적인 문인단체들이 강행을 하여 문제가 된 것이다.

 

그날 기념관 건립을 통과 시켜준 시의회 의원들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외국으로 선진지 견학을 떠났다.

전시관을 비롯하여 '선구자' 시비, 해란강변의 정자 재현, 룡두레 우물, 시의원들의 기념식수 곁에 새겨 넣은 기념비 등에

시 예산 11억 정도가 쓰였다고 한다.

 

물론 마산에서는 조두남씨 이전에 먼저 논의 되어야 할 사람이 있다. 마산이 배출한 ' 가고파'의 시인 노산 이은상이다.

노산은 마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 돝섬의 가고파 시비'를 비롯하여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심지어 친일과 독재 권력에 대한 부역이 다 밝혀진 상황에서도 마산시는 ' 노산동'을 신설했고, 1999년에 노산을 기리는

 '은상이 샘'을 만드는 등의 행정을 펴는 형편이니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은 가히 골동품 감이다.

 

더군다나 '은상이 샘'은 3.15나 부마항쟁과 관련이 있던 북마산 파출소 건너편에 세워져

시민단체에서 블록을 쌓는 등의 소동을 벌였고, 정의로운 마산의 시민정신을 우습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왕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기념관을 지으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시민으로서

자부심이나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인물을 선정하여 기념관을 세워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당연 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 한 일이 당연하지 않을 때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기념관이나 기념비는 그 사람 일생의 행적이 일반인에 비해 귀감이 될 수 있을 때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러한 인물들을 통해 자기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아 본 받으면서 자랄 수 있어야 하고

사회정의나 민족정기를 일깨우는데 부합하여 그 업적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얘기 해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마산시에서는 친일의혹의 확정적 증거가 드러나면 그 공과 과오를 함께 기록하여 밝혀주면 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지만

이 세상의 어디에서 과오를 기념하기 위하여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나라가 있던가? 결국 시 예산을 들여서 세운 조두남

기념관(?)은 잠정적적으로 폐쇄되었다가 이제 "마산 음악관"으로 재 개관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 되었다.

 

군사 독재정치를 마감하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까지 이르렀건만

국회의원이나 정책 입안과 결정의 책임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부족한 역사 인식은 아까운 시민들의 예산을

이렇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의 공감이나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고 지자체의 업적과시나 지역단체 일부의 이해관계에 얽혀

이루어진 정책이란 얼마나 허망하게 좌초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비단 이 지역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라는데 이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작년 2월.3.1절을 앞두고 동국대에서 도서관 개관 기념으로' 미당 서정주시인의 유품 전시회'를 해서 말썽이 되었고,

홍성에서는 ' 홍난파 기념관 개관'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으며 요 몇 년전에는 유치환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거제와 통영시가

서로 자기 지역이 진짜 생가라며 시 예산을 들여 생가를 두 곳에 복원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지역의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를 앞세워 시 재정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지역이 배출한 인물들에 대한 기념관건립이나 생가복원에 있어 지역민들의 합의에 기초한 인물이

선정되지 않으면 안 될 필요가 생긴다. 벌써부터 특산물 축제나 박물관, 유물관 건립, 도서관 세우기 등 지역 문화 발전을

이끌어 가기 위한 노력 들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된 인물 선정으로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치고

아까운 세금을 낭비하게 되는 경우가 숱하게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민이나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짓게 되는 기념관들이 왜 한결 같이 시민들이 환영 할 만한 인물선정을 못해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파행과 왜곡으로 점철되어 왔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고

단연 청산되지 못한 친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후는 '순국 선열의 날...' 앞의 포스팅과 중복되는 내용입니다. 부분수정)

 

봉건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일제 식민시기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개인적인 삶보다는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먼저 생각 했던 사람들은 의병운동에 나섰고,

또 항일 투쟁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죽고, 또 죽었다.

시절이 암울 할지라도 국가와 민족을 외면하고 권력의 편에 섰던 사람은 살아남았고 이름을 드날리기도 했다.

민족의 양심을 배반하고 민중의 고통을 외면 한 댓가로 그들은 영예를 누렸고 호의호식 했으며,

그 자녀들은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시켜 해방된 조국에서 정치가, 사업가, 대학 총장 등 사회 지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권력과 부와 명예를 세습 해 내려갔다.

 

또 해방공간과 6.25를 거치는 과정에서 좌우익의 대립으로 또 싸우고 죽고, 죽였다.

이후에도 월북한 사람 빼고, 월남한 사람 빼고 그러다 보니 알짜는 다 빠져 버렸는지 최근까지

기념관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본 받으라고 실어 놓은 교과서의 인물들조차

일제의 식민통치에 앞장서서 협력 동조하거나, 아니면 이승만, 박정희 시절 독재 권력에 부역한 사람들 일색이었다.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홍난파, 현제명, 이은호, 김기창, 모윤숙, 노천명, 김활란....등등

신 동엽 시인이' 쭉정이는 다 가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아직까지 우리들은 그 쭉정이들에 둘려 싸여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도덕적, 인격적으로 존경 할 만한 인물이나 자신의 신념을 위해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정의로운 사람보다는

그저 유명한 사람, 출세한 사람을 당연히 존경해야 하는 인물로 잘못 알아 오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지방의 입장에서는 중앙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면 곧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국민기금으로 " 박 정희 기념관"을 건립하자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단재 신 채호 같은 분은 예산지원이 안 되서 기념관 건립을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들이 분명 해진다.

 

권력이 바뀔 때 마다 힘 있는 사람 편에서 말을 바꾸고, 얼굴을 바꾸며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념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들은 비난받는 사회 풍토를 만들자.

그리고 암울 했던 시절 자식과 가족의 안위를 버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일생을 바친

정말 존경 할 만한 인물들을 발굴 해 내는 일에 앞장서자.

 

그래서 도덕적으로 과오 없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찾아내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하는 사람들의 기념관을 건립하고 생가를 복원하자. 그리하여 늘 정의롭지 못하게 흘러 왔던 것 같은

우리의 역사에 대해 우선 나부터 피해의식을 없애고 자부심과 긍지를 지녀보자.

그리고 우리의 자라나는 학생들과 자녀들에게 당당하고 떳떳했던 인물들을 본보기로 삼아 바람직한 인물로

성장하도록 북돋우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해 주자. 

해방공간이나 한국전쟁시기의 민간인 학살 문제도 진실을 규명하고 있는 마당에 제발 그 이전이 단계인 친일은 마무리를 짓자.

 

우리가 자라던 시절 .불행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부모님들께서 늘 우리에게 했던 말들이 있다.

 "너무 앞서지 말고 나서지 마라, 그저 알아도 모른 채 중간만 따라가면 된다.

 "식민지 현실이 또 좌우익의 대립 속에서 그저 비겁하고, 비굴해도 목숨만 부지하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부모님들이 계셨지만 이젠 좀 달라져 보자.

 

우리의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얘기하자.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떳떳하게 불의에 항거 하면서 정의롭게 살라고,

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유 의지로 선택하며, 자신의 선택에 제대로 책임 질 줄 알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되

도덕적으로 살라고...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눈치보고 혹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따라가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물쩍 넘기면서 죄과에 대한 면죄부를 주지 말자.

 

시인은 시로써만, 음악가는 음악으로써만 평가하고 그의 삶과는 분리시켜서 생각해야 한다는 따위

엉터리 같은 말에도 면죄부를 주지 말자. 인간의 몸과 정신이 따로 나누어져 있지 않듯이,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의 체험이

글이나 선율을 통해 고도의 정신적 승화를 거쳐 일반인들에게 감동을 자아내는 것을 그 기능으로 하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 정신과 삶의 궤적을 분리하라니...

 

그 정신은 썩어 문드러진 채, 한갓 손끝에서 기교를 부려대는 시인이나 음악가를 존경 할 수 없고

따라서 문화 예술인들은 재물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 파렴치한 행위보다

정신을 속이고 기만하는 행위가 훨씬 더 위험하고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 예술인들이 권력과 금력가 등 힘 있는 자에게 아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비판을 통해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 편에

설 수 있도록 깨인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친일을 청산하기 위하여 이번 총선에서 제대로 된 대표자를 뽑는 것 못지않게 전국 각지에서 제대로 된

존경할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을 발굴하여 기념관을 짓고 생가를 복원하는 일에 우리 지역민이 적극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한편 문화행정을 제대로 펴도록 또한 감시 할 일이다.

 

- 역사교육 2004. 봄. 64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

 

 

                

     사진 출처: 2015.11.19. 오마이뉴스, 윤성효기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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