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

노블레스 오블리주

생게사부르 2016. 1. 25. 21:59

칼레의 시민 (The Orgin of Noble Spirit)

 

 


우리의 정치 현실에 비추어 참으로 부러웠던 얘기라 이미 널리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꼭 한번 포스팅하고 싶었던 주제입니다.

 

높은 신분, 사회 지도층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 Oblige]’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347년,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 칼레는

1년 넘게 영국군에 맞서 외로운 투쟁을 벌이다 원병을 기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

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항복을 하려고 조아린 칼레 사절단의 머리위로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칼레를 대표하는 여섯명만은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와서

성문의 열쇠를 건네고 목숨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항복의 굴욕감과 시민들의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 그러나 누군가 여섯명이 그들을 대표 해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슬픔으로 작은 도시 칼레는 한 순간에 전쟁 이상의 비탄에 빠져야 했습니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었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나섰습니다.

“서로 죽기 싫어서 제비뽑기로 죽을 사람을 정한 다는 것은, 칼레가 전쟁에서 패한 것 보다 더 큰 수치와 모욕입니다.
비록 적 앞에 무릎은 꿇었지만 우리 도시의 정신과 민족 혼 만큼은 살려서 후손 앞에 떳떳한 시민이 되기를 바랄 뿐 입니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나오라...용기를 가지고..."

칼레의 가장 핵심인물이자 절정의 삶을 누리고 있던 외스타슈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분연히 나서자

시장인 장 데르가, 부유한 상인이었던 위상형제가 따라 나서 정해진 여섯명 보다 한명 많은 일곱 명이

죽음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누구 한 사람을 살릴 것이냐를 두고 다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자 이번에도 생 피에르가 나서

“ 처형이 있을 내일 아침, 시장으로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 했습니다.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다음 날 장터에는 여섯 명만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생 피에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안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비겁함을 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습니다.
“죽음을 자처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다.” 는 유서 한 장과 함께...

한 순간이나마 생피에르의 진정성을 의심 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끝까지 명예의 길을 선택한 그의 죽음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당시 임신중이었던 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 용감한 여섯 명의 시민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市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피에르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입니다. 1895년 6월 3일 기념상이 제막되었습니다.

 

 

          

 

 

<칼레의 시민>은 조각가 로댕에 의해 한명 한명 위대한 조각품이 되어 다시 살아 난 것입니다.

칼레시는 동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한, 여섯 명의 용감한 시민을 시청 앞 광장에, 그것도 맨땅에 그대로 내려 놓았습니다.
높은 좌대 위에 올라앉는 일반적인 조각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칼레 시민들이 그들과 팔꿈치를 부대끼노라면 그 옛날 이 영웅들과 함께 투쟁했던 사람들의

연대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로댕의 뜻을 받아들인 선택이었습니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

칼레의 영웅들이 보여준 순수한 희생정신은 지금껏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 되어 그 정신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시절이 혼란할수록 그 정신이 더욱 값을 발휘합니다.


아무렴 민주주의 원류가 서구이기도 하고 이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나라의 얘기라고는 하지만

시민들의 대표격으로 결정권을 행사 했고, 시민들의 덕택에 누리고 살았던 만큼 스스로가 확실하게 책임감을

갖고 시민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고매한 인간정신,

 

이렇게 존경할 만한 지도층이 있었다는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칼레의 시민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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