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서영 시 천국

생게사부르 2019. 6. 12. 00:18

천국/ 박서영



" 나로선 말이다. 널 용서한다. 그러나 알겠니 얘야,
'천국'을 다치게 해서는 안되는 거야."*


밤의 국도에서 고라니를 칠 뻔 했다
두 눈이 부딪쳤을 때
나를 향해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짓던
고라니의 검고 큰 눈망울

오랫동안 그걸 잊지 못하고 있다

그날 이후 그 길을 지날 땐 자꾸 뭔가를 만지게
돼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천국을 아직도
돌려주지 못하고 있어요
내가 갖고 있어요

천국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사라졌지요
도리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당신의 천국도 내가 갖고 있답니다
잠시 갖고 있다가 돌려주려고 했지만


                  

                             * 앙리 보스코 '반바지 당나귀'에서

 

 

 

'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2019. 2 . 문학동네

'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걷는 사람 시인선

 

박서영 유고시집 두편과

'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첫 시집이 복간되어 나왔나 봅니다

 

시인은 시를 남기고...

 

 

죽음만이 찬란하다는 말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네게 헤엄쳐 왔을

죽음을 정교하게 들여다 보는 장의사의 심정을 이해한 적 있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 물결들이 써 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2017.10.18  마지막 원고를 묶어 보내고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상성 김정진  (0) 2019.06.14
박서영 달과 무  (0) 2019.06.13
최문자 깊은 해변  (0) 2019.06.10
아이에게/ 이원  (0) 2019.06.09
심언주 관계  (0) 2019.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