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서영 달과 무

생게사부르 2019. 6. 13. 08:44

달과 무/ 박서영


우리는 서로에게 영혼을 보여준 날부터
싸우기 시작했지
달에 간판을 달겠다고 떠나버린 사내와 나는
벚꽃나무에 간판을 달다가 떨어진 적이 있고

침묵하는 입술은 나를 취하게 하네
난 꽃도 아니다. 이젠 무언가를 말해 주기를
지나버린 시간에 석유를 끼 얹고
불을 지르고 싶어지는구나
기억을 덮는 뚜껑으로 사용하기엔
달은 너무 아름답고 빛나네, 달은 말랑거리는 느낌
시간을 열었다가 닫는다

지구의 밥집들은 왜 자꾸 없어지고 있나
함께 먹은 가정식 백반
노랗게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속의 비빔밥

개업을 하고 나면 폐업을 향해 움직이듯이
마음을 열면 전 생애가 부서지고 사라져버린다
무엇을 생포하고 무엇을 풀어줄까
난 나비도 아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사로 잡힌 채
징징 울다가 날아오르는 꽃송이일지도 모르지
침묵 다음에 싸움, 영혼을 보여준 날의 싸움,
우리는 영혼을 보여준 날부터 싸우기 시작했지
달과 별은 나를 취하게 하네
당신은 하늘에 달아 놓은 간판 불을 켜지만
이별 후엔 함께 먹은 밥집들도 문을 닫아버려
나는 손을 뻗어 달의 간판을 꺼버리겠네
비밀식당들의 폐업소식을 알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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