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오규원 안개

생게사부르 2019. 6. 2. 20:51

 

안개/ 오규원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 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두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툭툭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툭툭 소리를 냈다

 

 

 

*      *       *

 

 

오규원 샘을 이어 받은 분이 이원 시인인데요

감각적인 시입니다

 

 

푸른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 아니었어요

 

다녀올게요

잘, 다녀올게요

 

인사하고 나섰을 텐데

 

오누이, 전 직장동료, 딸을 데리고 부모님 모셨을지

희생자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잘 모르긴 하지만

고만고만한 우리 이웃, 동료일테지요

 

구조든 인양이든 낼 쯤 윤곽이 나온다고 하네요

 

이 나이쯤 되면 사실 멀리 나갈 때 그런 생각을 하긴 합니다

'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천재지변에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 우려와는 달리 일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만

 

99% 돌아오더라도 돌아오지 못하는 그 1%

누구나 해당될 수 있습니다

해당된 당사자에게는 곧 100%인 셈이고요

 

오늘 소식을 보니 구조하는 부근을 제외하고 여전히 유람선이 붐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시간대 예약이 안 될 정도라고도 하네요

 

인명재천이라지만

하필이면 그 시간대 크루즈 선박을 만나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하기에는...

 

먼 이국땅에서 불행을 맞으신 분들 명복을 빌며 조속히 절차가 마무리되고

시신이라도 인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를 공부하면 결국 우리 인생의 종착역이 곧 죽음이며

이 세상에서 내가 빠져 나가도 세상은 일 없이 또 돌아간다는 것 쯤 자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만

 

젊은 시절부터도 애 늙은이 같이 3.15, 4.3 항쟁, 4.19, 5.18 최근의 세월호까지

사회적으로 억울한 죽음, 예상치 못한 죽음에 워낙 감정이입하면서 살아와서 이제 정서적으로 좀 피하고

싶기도 합니다

지금 나이에 젊을 때 같이 감정이입하면 허무주의나 우울증에 빠져들고 그런 감정을 감당할

에너지가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회피해도 결국은 감정정리는 해야겠지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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