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사람은 탄생하라 이원

생게사부르 2019. 5. 16. 08:45

사람은 탄생하라 / 이원


우리의 심장을 풀어
발이 없는 새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하나의 돌은

바닥까지 내려 온 허공이 되어 있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봄이 혼자 보낸 얼굴
새벽이 받아 놓은 편지

흘러간 구름
정적의 존엄

앞에

우리의 흰 심장을 풀어


손잡이의 목록

그림자를 품어 그림자 없는 그림자
침묵으로 덮여 그림자뿐인 그림자

울음이 나갈 수 있도록
울음으로 터지지 않도록

우리의 심장을 풀어

따뜻한 스웨터 한 벌을 짤 수는 없다
끓어 오르는 문장이 다르다
멈추어 섰던 마디가 다르다

그러나 구석은 심장
구석은 격렬하게 열렬하게 뛴다
눈은 외진 곳에서 펑펑 쏟아진다
거기에서 심장이 푸른 아기들이 태어난다
숨이 가쁜 아기들
이쁜 벼랑의 눈동자를 만들 수 있겠구나

눈동자가 된 심장이 있다
심장이 보는 세상의 어떠니

검은 것들이 허공을 뒤덮는다고 해서
세상이
어두워지지는 않는다
심장이 만드는 긴 행렬

더렵혀졌어
불태워졌어
깨끗해졌어

목소리들은 비좁다
우리의 심장을 풀어
비로소 첫 눈

붉은 피가 흘러 나오는 허공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랑은 탄생하라

우리의 심장을 풀어 다시
우리의 심장
모두 다른 박동이 모여
하나의 심장
모두의 숨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심장

우리의 심장을 풀면
심장 뿐인 새


* 사람은 절망하라/ 사랑은 탄생하라 :
이상,<선에관한 각서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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