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승희 사랑은

생게사부르 2019. 2. 13. 12:42

사랑은/ 이승희


스며드는 거라잖아
나무뿌리로, 잎사귀로, 그리하여 기진맥진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마른 입맞춤

그게 아니면
꽃잎 위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꽃잎의 아랫입술을 열고 온몸을 부드럽게
집어 넣는 일
그리하여 당신 가슴이
안쪽으로부터 데워지길 기다려 당신의 푸르렀던 한 생애를 낱낱이
기억하는 일

또 그것이 아니라면
알전구 방방마다 피워 놓고
팔베개에 당신을 누이고 그 푸른 이마를 만져보는 일
아니라고? 그것도 아니라고?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먹은 일이야
뾰족한 돌과 반달모양의 뼈로 만든 칼 하나를
당신의 가슴속 깊숙히 박아 놓는 일이지
붉고 깊게 파인 눈으로
당신을 삼키는 일
그리하여 다시 당신을 낳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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