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순희 역류하는 소문

생게사부르 2019. 2. 15. 14:04

역류하는 소문/ 박순희


봄밤은 무리지어 피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리는 많은 말 발굽들이 있고
나는 그 중에 한개를 뽑아 구두에 매달았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낮이 지나갑니다
낮 동안 소리 없는 말들이
엄지에서 태어나고 죽어갑니다

천리를 간다는 말엔
흥겨운 안장이 있습니다

난 무엇인가를 부르다 깨어나기도 하는데 간혹 후생이나 전생의 처지를 몸안에서 겪는다는 생각입니다 낮
게 젖은 꿈이 발굽을 타고 땅 속으로 스며드는 아침, 밤새 돌아다녔던 몸이 말합니다 어제는 낯선 심장을 만
나 아프지 않게 울었습니다 소문은 무리지어 달리는 생물입니다 문 안의 일이나 문 밖의 일이란 당신이
던진 말발굽 하나가 단초입니다 사람들의 말로 지쳐가는 귀는 워워 말을 쓰다듬는 것이 해답입니다

나는 역류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심심한 하루를 보냅니다
매일 넘치지 않기 위하여 쪼그려 앉습니다
이야기는 안경을 벗어야 볼 수 있습니다
부질 없이 부푼 것 중 하나가 여벌이어서
입술이 부르틉니다
봄밤에 나는 말 발굽을 뽑아 버립니다
주인 없는 말 발굽들이 어디론가 질주하고 있습니다


   - 5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수상작

 

1970. 충북 음성. <시와공감>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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