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경미 다정이 병인 양

생게사부르 2019. 2. 11. 08:12

다정이 병인 양/ 김경미



1
매일 기차를 탑니다 거짓말입니다
한주일에 한번씩 기차를 탑니다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실은 한달에 한번쯤
탑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사실을 바라는 건
배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꽉찬 배신은
꽃잎 겹겹이 들어찬 장미꽃처럼 너무
진하고 깊어 잎잎이 흩어 놓아
아름다울 뿐 다른 방도가 없다 합니다

2
산수유가 빨갛게 동백꽃을
떨어뜨립니다 흰 목련이 거짓말을
하더니 샛노란 은행나무가 됐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람 안에는 사람이라는
다민족, 사람이라는 잡목숲이 살아
국경선을 다투다 갈라서기도 하고
껴안다 부러져 못 일어나기도 합니다
꽃필 때 떨어질 때 서로 못
알아 보기도 합니다

3
당신은 세상 몰래 죽도록
다정하겠다, 매일 맹세하죠
거짓말이죠 세상 몰래가 아니라 세상
뭐라든이 맞죠 아시죠 이것도 거짓말
사실은 매일이 아니고 매시간이죠
매시간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진실이
너무 가엾어서죠 나사처럼 빙글대는
거짓말은 세상과 나를 당신을 더욱
바짝 조여줍니다

4
진흙으로 만든 기차 같죠 어디든
가겠다 하고 어디도 가지 못하죠
다정이 죽인다 매일 타이르죠 종잇장
같은 거짓말에 촛불이 닿을 듯 말 듯
촛농같이 흘러 내리는 다정, 뜨거움이
차가움을 잡는지 차가움이 뜨거움을
모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다정이라는 거짓말 죽지요.
죽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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