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백석 立春

생게사부르 2019. 2. 6. 12:21

백석의 入春

 

 

 

농사 짓던 전통사회에서 절기가 가지던 의미는 곧 사람들의 일상이었습니다.

백석의 '입춘' 을 보면 시라기 보단 수필인데 입춘 때 함께 오는 고향이야기

돈과 목숨과 생활과 경우와 운수같은 사람 사는이야기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문화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이 좀 다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 맥락

그 흐름에는 또 공통적인 것이 있어서 옛 추억을 소환해서 읽어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 저도 아슴아슴한데,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젊은 세대는 영화에서 보거나

책에서나 읽었을 뿐 직접 경험이 잘 없어서 공감하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울 기억 속의 고향 이야기 같아서 올려 봅니다  

 

눈이 밝지 못한 할머니들이 의레 찾던 한달이 큰 글자로 채워진 농협달력

손이 없는 날이니 하며 이사갈 날을 잡거나 결혼식 같은 집안 대소사 행사

절을 찾으면 필히 챙기던 음력이 함께 적혀 있던 그런 달력 이제는 잘 없네요.

휴대폰 사용으로 시계도 어디 여행 나갈때나 필요하고 달력 자체를 소량 인쇄합니다.

각 집단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달력들 얻게 되는데요.

그 달력도 그림이나 사진을 곁들인 멋진 작품이지만 음력은 잘 기록되지 않은 게 대부분입니다.

 

공무원 연금공단 달력, 성당달력, 메트라이프는 오랫동안 스누피 그려진 탁상달력을 보내 왔고

약국 달력, 이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 그림을 싣더니 요즘은 아마추어 약사 작가들 인물이나 풍경사진이

실리기고 하고 농협달력은 절반은 아름아름 화가들 그림으로 채워졌지만 그나마 음력을 헤아려 볼 수는 있겠네요.

 

 

까치 설에 묻혀 넘어간 입춘, 백석의 입춘이야기 조단조단 들어봅니다.

 

 

입춘立春/ 백석


이번 겨울은 소대한 추위를 모두 천안삼거리 마른 능수버들 아래 맞았다.
일이 있어 충청도 진천으로 가던 날에 모두 소대한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공교로이 타관 길에서 이런 이름 있는 날의 추위를 떨어가며 절기라는 것의
신묘한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였다.
며칠내 마침 봄날 같이 땅이 슬슬 녹이고 바람이 푹석하니 불다가도
저녁결이나 밤 사이 날새가 갑자기 차지는가 하면 으레 다음날은 대한이
으등등해서 왔다. 그 동안만 해도 제법 봄비가 풋나물 내음새를 피우며
나리고 땅이 눅눅하니 밈*이 돌고해서 이제는 분명히 봄인가고 했는데
간밤 또 갑자기 바람결이 차지고 눈발이 날리고 하더니 아침은 또 쫑쫑하니
날새가 매찬데 아니나다를까 입춘이 온 것이다. 나는 실상 해보다는 달이
좋고 아침보다 저녁이 좋은 것 같이 양력보다는 음력이 좋은데 생각하면
오고가는 절기며 들고나는 밀물이 우리생활과 얼마나 신비롭게 얽히었는가.
절기가 뜰 적마다 나는 고향의 하늘과 땅과 사람과 눈과 비와 바람과 꽃들을
생각하는데 자연이 시골이 아름답듯이 세월도 시골이 아름담고 사람의 생활도
절대로 시골이 아름다울 것 같다.


이번 입춘이 먼 산 너머서 강 너머서 오는 때 우리 시골서는 이런 이야기가 왔다.
우리 고향서 제일 가는 부자가 요즈음 저 혼자 남폿불 아래서 술을 먹다가
남포가 터지면서 불이 옷에 닿아 그만 타 죽었다 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
난 사람인데 술을 먹되 누구와 동무해 먹지 않았고 전등이나 켤 것이지 남포를
켰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는 시비가 이야기에 덧묻어 왔다. 또 하나는 역시 우리
고향에서 한때는 남의 셋방살이를 하며 좁쌀도 되술로 말아먹고 지나던 사람이
금광에 돈을 모으고 얼마전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사들였다는 이야긴데 여기에는
또 어떤 분풀이 같은 기운이 말끝에 채이었다.

오는 입춘과 같이 이런 이야기를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시골서는 요즈음
누구나 다들 입이 삐치거나 솜씨를 써 가며 이야기들을 할 것인데 그럴때마다
돈과 목숨과 생활과 경우와 운수 같은 것에 대하여 컴컴하니 분명치 못한 생각
들이 때로는 춥게 때로는 더움게 그들의 바람벽에 바람결같이 부딪치고 지나가는
입춘이 마을 앞벌에 마을 어귀에 마을 안에 마을의 대문간에 온 것이라고.

이런 고향에서는 이번 입춘에도 몇번이나 '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하며 입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해도 입춘이 넘으면 야지 바른 둔덕에는 머리칼풀의 속움이 트는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만 들면 한겨울 내 친했던 창애*와 썰매와 발구며 꿩, 노루, 토끼에 멧돼지며

매,멧새, 출출이들과 떠나는 것이 섭섭해서 소년의 마음은 흐리었던 것이다. 높고

무섭고 쓸쓸하고 슬픈 겨울이나 그래도 가깝고 정답고 흥성흥성해서 좋은 겨울이

그만 입춘이 와서 가 버리는 것이라고 소년은 슬펐던 것이다

 

그런 소년도 이제는 어느덧 가고 외투와 장갑과 마스크를 벗기가 가까워서 서글픈

마음이 없듯이 겨울이 가서 슬퍼하는 슬픔도 가 버렸다. 입춘이 오기전에 벌써 내

썰매도 노루도 멧새도 다 가 버린 것이다.

 

입춘이 드는 날 나는 공일무휴空日無休* 의 오피스에 지각을 하는 길에서 겨울이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지 못했으나 봄이 오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는 않았다. 봄의

그 현란한 낭만과 미 앞에 내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약하고 가난할 것인가.

입춘이 와서 봄이 오면 나는 어쩐지 까닭모를 패부의 읍울敗負悒鬱을 느끼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입춘이 없는 세월 속에 있고 싶다.

 

 

* 밈: 아지랑이

* 창애: 짐승을 꾀어 잡는 틀
* 공일무휴: 쉬는 날이지만 쉬지 못함

* 패부의 읍울: 패배에 대한 근심으로 마음이 답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