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천양희 지나간다, 사람의 일

생게사부르 2019. 2. 9. 12:33

지나간다/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 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 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 이로써 내 일생이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사람의 일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     *

 

 

참 쉬운데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시인이 살아온 삶의 내공 때문인 거 같습니다.

 

사실 강의도 그렇다고 합니다

' 한 道'를 통하고 나면 학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강의를 한다고 합니다.

 

똑 같이 쉬운데 왜 어떤시는 가볍게 여겨지고 어떤 시는 가볍지 않으냐

분명 차이가 있을테지요.

 

시가 가볍다는 건 시를 쓴 시인이 인생을 깊이있게 접하지 못하였다는 얘기가 아닐지...

시는 곧 그 '시를 쓴 사람'이니까 인생을 무난하게 살아서 깊은 시가 아예 나올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전에 영어공부할 때 번역되어 읽었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 가난' 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라고 했는데

' 가난' 이 뭔지 모르는 한 소공자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 우리 집은 가난 합니다.

부모님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합니다

운전 기사도 가난하고 하녀도 가난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 결코 체험해 보지 못하고 확신이 없는 내용을 글로 쓰면 공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거나 설득을 시킬 수 있을까요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절실하게 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어려운 과정을 다 겪고 '한 道'를 통하고 쉬워진 시와

전혀 ' 道'에 올라가 본 적이 없는, 다행일지 불행일지 인생을 쉽게 살았던 사람의 쉬운 시는

그 깊이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던 연륜이 묻어나는 시인들 중 천양희 시인(1942년생. 77세)

최승자 시인(1952년생 67세)의 시는 쉽게 쓰여져도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집니다.

삶의 내공이 다 ' 한 道' 를 터신 분들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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