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장독대가 있던 집/ 권대웅

생게사부르 2019. 2. 18. 13:11

장독대가 있던 집/ 권대웅


햇빛이 강아지처럼 뒹굴다 가곤 했다
구름이 항아리 속을 기웃거리다 가곤 했다
죽어서도 할머니를 사랑했던 할아버지
지붕 위에 쑥부쟁이로 피어 피어
적막한 정오의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조끔씩 떠나가던 집
빨랫줄에 걸려 있던 구름들이
저의 옷들을 걷어 입고 떠나가고
오후 세시를 지나
저녁 여섯시의 골목을 지나
태양이 담벼락에 걸려 있던 햇빛들마저
모두 거두어 가버린 어스름 저녁
그 집은 어디로 갔을까
지붕은, 굴뚝은 다락방에 모여
쑥덕거리던
별들과
어머니의 슬픔이 묻은 부엌은
흘러 어느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을까
뒷짐을 지고 할머니가 걸어간 달 속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달빛에 그리움들이 발효되어 내려올 때마다
장맛 모두 퍼가고 남은 빈 장독처럼
응응 내 몸의 적막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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