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여자
이런 여자라면 딱 한번 살았으면 좋겠다
잘 하는 일 하나 없는, 계산도 할 줄 모르는 여자
허나, 세상을 보고 세상에 보태는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한 여자
어디선가 숨어 내 시집 속의 책갈피를 모조리 베끼고
찔레 꽃 천지인 봄 숲과 미치도록 단풍드는
가을과 내 시를 좋아한다고
내가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들고 다니는 여자
그러면서도 부끄러워 자기 시집 하나 보내지 못하는 여자
어느날 이세상에 큰 슬픔이 찾아와 내가 필요하다면
대책없이 떠날 여자, 여자라고 말하며
'여자'란 작품속에만 숨어 있는 여자
이르쿠츠크와 타슈켄트를 그리워 하는
정말, 그 거리 모퉁이를 걸어가며 햄버거를 씹는
전신주에 걸린 봄 구름을 멍청히 보고 서 있는
이런 여자라면 딱 한번 살았으면 좋겠다
팔십리 해안 절벽 변산 진달래가
산 벼랑마다 드러 눕는 봄날 오후에
* * *
잘하는 일 하나 없고, 계산에도 밝지않고
어디선가 숨어 시집속의 책갈피도 베껴 쓰고
이 만큼은 분명한데....
세상을 보고, 세상에 보태는 마음이 넉넉해야 ^^~
사진출처: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앙고라 쉐타가 포근해 보이는,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케 시- 나의 생활은, 은빛으로 밝은 (0) | 2016.02.14 |
---|---|
김승희 객석에 앉은 여자, 김정란 내가 기르는 슬픔 한마리 (0) | 2016.02.13 |
강인한- 고려의 새, 봄회상 (0) | 2016.02.11 |
아주 작고 하찮은 , 버클리풍 사랑노래 (0) | 2016.02.10 |
조행자-아침식사, 밥, 말들 (0) | 2016.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