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 올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 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거
내 몸에 들어 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 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광실 구름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잔 마시러 가네
아주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 안을 때가 있네
황동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 치우는
그냥 설겆이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 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 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저 샛노란 유채 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 했음을 알아 내는 것
이국(異國) 햇빛 속에서 겁없이
* * *
간혹 주위분들 중에 사는 일에
너무 욕심이 없다고 혀를 차기도 했지만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국가와 민족과 인류 평화 같은
내 영향력이 별로 미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살 수만은 없는 일
우리의 관심과 감정의 기복은
주위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
일상으로 마주치는 사소한 일에서
더 많이 감동하고 화내고 슬퍼한다
다툼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것일때 보다는
한 집에 사는 사람들과의 생활에서 훨씬 자주 일어난다
작고 하찮은 것
- 이를테면
' 양말을 왜 뒤집어 벗어 놓느냐'
' 보일러 불을 켰으면 꺼야지 ' 같은
아이들이 귀한 요즘 , 명절 날 잠깐 보게 된
친정 쪽 8개월 손자 하나에
어중간한 나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뻘
다섯이 붙어 재롱을 피웠다.
아이의 신선한 반응을 보려고...
눈길이 미치지 않는 작은 것,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사소한 것
기쁨과 행복 역시 그러할 것이다.
주변 가까운 곳, 일면 사소한 것에 눈길을 주면
기쁨과 행복은 무수히 도처에 널려 있다
'왜 우리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고
김수영 시인의 시가 아니라도
예감을 지닌 사람이 아닌 한
범인(凡人)의 일상이 그러하기에
본디 삶이 그러기가 더 쉽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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