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안도현 겨울밤 시 쓰기

생게사부르 2019. 1. 8. 22:44

겨울밤에 시 쓰기/ 안도현

 

 

연탄불 갈아 보았는가
겨울 밤 세 시나 네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 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억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 눈이 계층상승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은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마라,
이렇게 썼다가는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 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드는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어느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 수출 자유지역 귀금속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기준법 한 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작업 하고 왔거나
술 한잔 하고는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 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연탄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둥바둥 매달려 지내 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 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제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 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의 한 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로록
끝없이 쓰다보면 겨울 밤 세시나 네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은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 시 길게 쓰기하는 내기처럼 서사가 담긴 시... 안도현, 도종환 시인은 나의 본향 같은 사람들이다

 

전교조 교사였던 공통점 세상을 보는 시선들이 흡사 했다

 

나도 당연히 연탄불 갈아 본 세대

밑 불이 많도 적도 않을 때 갈아 넣기 위해 조바심도 내 봤다

큰 들통에 물을 가득 채워 연탄위에 얹어 놓으면 겨울이라도 끓인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랫목에 시꺼멓게 탄 흔적은 무늬

지글지글 끓어대던 방에 지친 몸을 누이면 노골노골 녹아내리던 그 느낌

 

명절 날  

집안 별미로 만들던 고기 산적을 지금도 계속 만들지만

시어머님 연탄 불위에서 기름 뚝뚝 흘리며 구웠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겨울철이면 얼어 있는 곳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럼을 방지하기도 했고

누군가 이웃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자주 올라 왔다.

특히 입시나 취업을 위해 객지에 나갔다가 연탄가스를 마셔 기회를 놓쳤다든가 사망했다는 

얘기를 접하면 그가 피워보지 못한 꿈이 내 마음에도 들어와 앉아 마음이 아렸다 

 

이번 겨울, 강릉 펜션에서는 보일러 이음새가 진동으로 떨어져 나와 이제 막 청소년을

벗어나 성인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의 생떼같은 생명을 빼앗았다

그런 사고 뒤에는 늘 무자격자 시공 같은 부조리한 사회풍조, 관리감독관청의 안일 같은 스토리가 

연탄 땔 당시나 가스 켜는 지금이나 똑 같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슬프다.

 

세상은 편리하고 풍족해 지는 듯이 보이는데 사람이 쓰는 마음은 최선과 대충 사이에서 천차만별이다 

 

 

어떻든 안도현은 ' 너에게 묻는다' 는 시로 ' 연탄' 이라는 대상을 선점한 시인인 듯하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장작불의 화기로 마음만은 얼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