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2.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잃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
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십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시집『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 <문학춘추> 1965년
(1921-1968)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을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시들이 참으로 현대적이라는 생각
혹시 50-60년대 미스코리아 사진이나 연예인 사진을 보게 될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당시로서는 최신 유행의 첨단을 달리던 사람들인데 머리모습이나 복장이 왠지 '촌"스럽게
느껴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사용하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 말투와 문장
그러나 김수영 시인의 시는 그렇지 않아 세대를 거슬러 호감을 갖게 한다.
젊은 시는 젊은 사유에서 나올 것이다
시에서는 유약한 지성인으로 표현되지만 시대를 한참 앞서 살았던 '거인'임을 다시 확인한다.
생몰연대가 (1921-1968)이니
태어나신 해를 기준으로하면 95년, 돌아가신 해를 기준으로도 거의 50년전 활동하신 분이신데...
시인이 시대를 앞서 사는 사람들이라곤 하지만 앞서도 너무 앞서 사시다가
또 일찍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김용택' 시인의 다음 글에 매우 공감한다.
" 김수영의 모든 시들은 완벽했다. 지금도 나는 김수영의 시들을 읽으면 가슴이 뛴다.
김수영, 그가 있어 한국시단은 아직도 세상과 짱짱하게 대결한다."
- " 시가 내게로 왔다" 엮으면서 ,< 멀리서 느리게 오나,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중에서
* * *
블로그 시(詩)하늘 통신에 김수영 시인의 시세계와 약력이 잘 소개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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