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百年 문태준

생게사부르 2018. 12. 11. 00:32

百年


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
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 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 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 뜨겁게 껴안자던 백년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 그늘의 발달. 2008.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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